| “참 너도 걱정이로다. 왜 꾸지람을 안 듣도록 좀 몸을 단정히 못 가지느냐.” |
| “누님 걱정 마세요. 여편네들한테 꾸지람 듣는 것은 무섭질 않으니깐.” |
| 허세(虛勢)로도 볼 수 있고 빈정거리는 말로도 볼 수 있는 이 말에 현숙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것을 보고 일성이는 웃었다. 잘게 생긴 앞니가 전등에 반사하여 유난히 반짝였다. |
| “왜 눈살을 지세요? ― 대체 여편네란 사내를 모욕하는 것을 제일 통쾌하게 생각치 않아요?” |
| 그리고는 대답을 요구하는 듯이 현숙이와 영옥이를 한 번 번갈아 보았다. |
| 현숙이는 대답치 않았다. 영옥이는 신문 뒷면을 뒤지었다. |
| “네? 안 그래요?” |
| “듣기 싫다. 좀 철이 들어라.” |
| “하하하하.” |
| 잘게 생긴 일성이의 앞니가 또 전등불에 반짝였다. |
| 이러한 가운데서 현숙이는 머리 속에 일어나는 일종의 혼란(混亂)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손아래 동생, 자기가 책망 한 마디만 하면 머리를 긁고 얼굴을 붉힐 줄만 알았던 일성이에게서 현숙이는 어딘지 모를 일종의 ‘힘’을 보았다. 그리고 그 ‘힘’은 불행히 현숙이의 지식과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었다. 그것은 동생이라 하는 말 아래 숨어 있는 억센 사나이의 그림자였다. 예의를 예의로써 대하고 무례를 예의로써 물리칠 줄밖에는 모르는 현숙이의 상식으로써는 도저히 판단할 수 없는 손위 동생. |
| 예외도 없었다. 경우도 없었다. 상식으로 판단할 수 있는 온갖 것은 그의 앞에서는 그 존재를 잃을 것이었었다. |
| 그 앞에 당면한 현숙이는 아직껏의 제 인생관과 사회관과 거기서 자연히 생겨 난 처세술에 아직 더 수정을 하고 개방을 하여야겠다는 필요를 느낄 유여도 없이 먼저 그 억셈을 경멸하였다. 그 경멸에는 미움도 섞였다. 똑똑히 지각은 못하였지만 공포(恐怖)조차 섞여 있었다. 일성이의 반짝이는 이빨이 현숙이에게 몹시 불유쾌하게 보였다. |
| 참 이제 이 집에 오는 “ 길에 이런 일이 있었지요. 저 앞에 수도를 고치느라고 구렁을 파지 않았어요? 그리고 거기는 한 사람이 겨우 다닐 만한 나무를 하나 걸쳐 논 뿐이지요? 거기까지 와서 막 건너가다 보니깐 저편 쪽에서 여학생이 하나 건너오랍디다그려. 그래서 첨에는 내가 양보를 할까 했지만 그러나 사내가 한 번 냅딘 발을 어떻게 도로 옴쳐요? 더구나 내가 그 다리 위에 발을 먼저 올려놓은 이상에야 말야요. 그래서 막 건너가는데 그 여학생은 퍽 근시안인지 혹은 자기가 건너오면 내가 도로 물러가리라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당당히 건너옵니다그려. 가운데서 딱 만났지요. 누님, 여편네란 건 그런 게야요? 거기서 딱 버티고 서더니 나를 쳐다보겠지요. 아마 도로 물러가라는 뜻인가 봐요. 꼴이 미워서 나도 딱 마주 버티고 있었구료. 그러니깐 용서하세요 하더니 한 발을 내놓습디다그려. 그래서 어서 가시지요 하고 그냥 서 있으니깐 또 한번 용서하라고 그래요. 너무 어이없고 미워 칵 붙안아서 이편으로 옮겨놓아 주고 말았지요. 혹은 그 ― 옮겨 놓을 때에 어떻게 내 뺨이 궐의 뺨에 건드렸는지도 몰라요. 그랬더니 홱 돌아서면서 내 뺨을 딱 하고 휘갈깁디다그려. 누님 그게 예의야요? 여편네란 사내를 모욕하는 것을 제일 통쾌하게 알 테요. 아마 궐은 인제 한 달 동안은 그 이야기를 자랑하러 돌아다닐걸요.” |
| 그런 뒤에 일성이는 또 한번 하하하 하고 웃었다. |
| 그 이야기에 부러 대척치 않은 현숙이는 영옥이에게 향하였다. |
| “내일 자수 강습회에 갈 테요?” |
| 영옥이는 겨우 신문을 놓았다. |
| “가잖구요. 언니는?” |
| “나? 나는 그만둘까봐.” |
| “왜요?” |
| “사랑방도 좀 치워야겠고 ―.” |
| “그게야 아침에 잠깐 다녀와선들 ― 가세요.” |
| “글쎄.” |
| 일성이의 이야기에 대척치 않으려 이야기를 꺼낼 뿐 특별한 목적이며 뜻이 없었던 현숙이는 이만치로 이야기를 끝을 내었다. |
| 그 이야기의 뒤를 일성이가 받고 일어섰다. |
| “영옥 씨, 자수 강습에 다니세요?” |
| “네.” |
| 영옥이는 간단히 대답하였다. |
| “불란서 자수예요?” |
| “네.” |
| “누님도 다시니구요?” |
| “그래.” |
| “그럼 누님, 넥타이에 수나 하나 놓아 주시구료.” |
| 이런 뒤에 자기의 수놓은 넥타이를 끌어내어 내려다보던 일성이는 갑자기 제 넥타이의 내력을 자랑할 생각이 난 모양이었었다. |
| “누님, 이 넥타이 어때요?” |
| 현숙이는 힐끗 볼 뿐 대답치 않았다. 일성이는 이번에는 영옥이에게 향하였다. |
| “영옥 씨, 어떻습니까?” |
| 자랑하는 듯이 내어보이는 그 넥타이에 대하여 탄상자의 지위에 서지 않을 수 없은 영옥이는 좋습니다고 하였다. |
| “중국 모던 걸이 수놓은 게야요.” |
| 하면서 일성이는 보아 달라는 듯이 앞으로 내어밀었다. 듣고 보니 어딘지는 모를 지나 색채가 있는 듯하였다. |
| “조선도 모던 걸이 꽤 생겼지요? 하지만 중국 모던 걸만은 못해요. 조선서는 모던을 일본을 거쳐서 수입하는데 중국서는 직수입을 하니까요. 그만치 ― 조선보다 한층 더 앞선 만치 사내를 업수이 여기는 도수도 더하지요. |
| 쩍하면 구두를 신겨 달라고 발을 앞으로 내어밉니다그려.” |
| “그러면 너 같은 모던 보이는 그 신을 신겨 준 뒤에는 그것을 자랑하러 돌아다니더냐?” |
| 이것은 농담이라기에는 너무 독한 험구였겠다. 그러나 일성이에게 대한 어떤 불유쾌한 반감은 현숙이로 하여금 아무 비판이 없이 이런 말을 하게 한 것이었었다. |
| 영옥이가 얼른 신문을 도로 들었다. 일성이도 고소하였다. |
| “보구료. 누님도 남자를 모욕하는 것으로 재미를 삼지 않나.” |
| 일성이는 아직껏 여자에게 하던 빈정거림은 온전히 생각도 안하는 듯 싶었다. |
| “그럼 네가 아직껏 여자에게 대해서 하던 말은 무에냐? 그건 여자를 모욕하는 게 아니냐?” |
| “나요? 그게야 사실을 예를 든 뿐이지.” |
| “그만둬라. 영옥 씨가 속으로 욕할라.” |
| “영옥 씨가요? 영옥 씨, 절 속으로 욕하세요? 그러진 않으시겠지요.” |
| 하면서 일성이는 영옥이를 들여다보았다. 영옥이는 얼굴이 새빨갛게 되었다. |
| “천만에.” |
|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 “보세요. 어딜 욕을 하신다구.” |
| “영옥이도 네가 흉보는 그 ‘여자’의 한 사람이다.” |
| “아 그렇던가? 그럼 전부 취소할까요?” |
| 일성이는 머리를 긁었다. |
| 일성이의 지식은 광범(廣汎)하였다. 그러나 그 지식은 조잡(粗雜)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