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통과 순서와 숫자가 없었다. 그만치 어떤 편으로 보아서는 오히려 진실에 가깝다고도 할 수가 있었다. |
| 이것은 그의 생활과 환경과 성격이 낳은 바 결과였었다. 목숨 있는 인형과 같이 아무런 일에도 간섭치 않고 지내는 어머니의 아래서 다른 감독자는 없이 자란 일성이는 그의 인생관과 지식을 온전히 다른 곳에서 얻지 않으면 안 될 자리에 있었다. 그럴 때는 손쉽게 그의 사면에는 불량소년이라 하는 떼가 있었다. 그는 거기서 지식과 인생관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있지만 가정의 정이라는 것이 없는 이 소년은 집을 모르고 방랑 생활을 하였다. 활동사진과 연극은 이 소년의 커다란 오락이요 위안처였으며 겸하여 지식의 근원이 하나이었었다. 사회와는 온전히 틈을 그어 놓은 부랑소년의 축에 섞여서 사회를 바라볼 때에 이러한 방관자(傍觀者)로서야 볼 수 있는 사회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비판도 이 소년의 지식의 하나이었었다. 그것의 부산물인 역관적 사회관(逆觀的 社會觀)도 그의 지식을 활약케 하는 한 힘이 되었다. 사회의 학대와 멸시는 이 소년의 마음을 더욱 비꼬아지게 하는 반면에 더욱 단련시키는 풀무불이 되었다. |
| 게다가 이 소년에게는 천성에 타고난 화술(話術)과 그 변설을 더욱 빛나게 하는 그 독특한 역관적 사회관과 거기 어울리는 아름다운 눈과 앞니 (몹시 반짝이는)가 있었다. 더구나 무기 위에는 사회의 학대의 필연적 결과로서 생겨 난 반역심과 그 반역심을 행동화(行動化)할 수 있을 만한 침착과, 그 침착을 돕는 포학성(暴虐性)이 있었다. 부드럽게도 굳게도 아름답게도 또는 무섭게도 마음대로 변할 수 있는 그 무기는 영리한 그의 마음의 깊은 속에 숨어 있어서 주인의 나오라는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필요에 응해서 그 무기를 때때로 꺼내어 쓰면서 사회와 병행하여 헤엄쳐 나아가던 그는 문득 여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동시에 그 무기는 용서없이 여인의 위에 내렸다. |
| 혹은 아름답게 혹은 무섭게 마음대로 변할 수 있는 그 무기는 많은 여성을 정복하고 혹은 유혹하는 데 그를 도왔다. 여성에서 여성으로 혹은 제 미모를 이용하여 혹은 공갈로 혹은 변설로 많은 여성을 접하는 동안에 그의 고약한 지혜와 지식은 더욱 늘었다. |
| 이러한 스무 살이라 하는 열성의 나이는 영리한 현숙이로도 능히 해석할 수 없고 판단할 수 없는 수수께끼였었다. 어린애와 같은 천진한 웃음을 웃는 한편으로는 때때로 억센 그림자가 걸핏걸핏 보이는 것을 현숙이는 기괴한 마음상으로 바라보았다. 그 가운데는 예기하였던 바와 어그러지는 데 대한 불만도 있었다. 모반함을 받은 듯한 노여움도 있었다. 웃동생으로서의 위신이 차차 사라져 가는 듯한 현상에 대한 분만(憤懣)도 있었다. 자존심을 상한 듯한 불유쾌함도 있었다. |
| 이러한 기분 아래서 일성이의 이야기를 억누르려고 때때로 독설을 하는 현숙이는 그 독설이 여자로서는 굳게 삼갈 것이라고 아직껏 지켜 온 그 교양도 잊었다. 자기는 웃동생이라는 지위에 대한 자각까지 엷어졌다. 그리고 그는 점잖지 못하게 동생과 말다툼을 하여 이기려 하는 철없는 자기를 발견하였다. |
| 일성이는 몹시 이야기를 즐겨하는 사람이었었다. 궤변(詭辯), 능변(能辯) ― 어느 편으로라도 붙일 수 있는 그의 이야기는 그의 일종의 사교술로까지 되어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저 이야기로 이야기는 넘어갔다. 현숙이가 앨 써 누르려는 것은 그로 하여금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하는 동기가 되었다. |
| 그리고 무슨 이야기에든 그는 다 그 이야기에 자기의 판단과 의견을 붙이기를 잊지 않았다. 이것이 그의 담화술이었었다. 현숙이에게 대한 반항도 되었다. 그러나 그 뒤에는 그 판단을 증명키 위하여 어떠한 예를 들기를 잊지 않았다. 그 든 바의 예는 대개가 그 독특의 것으로서 어떻게 보면 억지의 예라고까지 할 수 있으나 그는 그런 것은 기탄치 않았다. |
| 그리고 그는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 현숙이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조차 사양치 않았다. 이야기가 어떻게 하여 불량소년이라는 데 미쳤을 때였다. |
| 일성이는 문득 영옥이에게 이렇게 물었다.―영옥 씨 세상에서 “ , 저를 불량소년이라는데 영옥 씨도 그렇게 보십니까?” |
| “천만에.” |
| 얼굴이 새빨갛게 되며 영옥이는 이렇게 대답치 않을 수가 없었다. 일성이는 뒤를 쫓아왔다. |
| “그럼 저를 어떻게 보십니까? 한 번 속임없는 판단을 듣고 싶습니다.” |
| 영옥이는 대답할 바를 몰랐다. 다만 엄지손가락으로 손바닥을 긁으며 침을 한 번 삼킬 뿐이었었다. |
| “네? 아무런 말씀을 하셔도 탄하지 않겠읍니다. 말씀해 보세요.” |
| “그게야 ―.” |
| “네? 그게야 어때요?” |
| 영옥이는 또 막혔다. |
| “네? 말씀해 보세요.” |
| 이러한 추격전에 현숙이는 조정자로서 들어서지 않을 수가 없다. |
| “일성아, 예절을 알아라.” |
| “누님은 가만 계시오. 영옥 씨, 어떻습니까?” |
| “야 !” |
| 현숙이는 눈으로 꾸짖으면서 다시 불렀다. |
| “왜 이래요. 이건 언론압박이요 뭐요? 남의 말에 가로 들어서 가지고.” |
| 여기 대하여는 현숙이는 대답할 바를 몰랐다. 이러한 불법과 무례의 앞에 쓰는 대항책은 그는 아직 못 배운 것이었었다. 현숙이의 마음은 노여움으로 떨렸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이 위에 웃동생으로서의 위엄을 쓰려다가는 더 창피한 꼴을 보기는 명백한 사실이었었다. 이것을 청년의 혈기라고 용서할 만한 관대한 마음과 여유를 잃은 현숙이는 증오에 불붙는 눈으로 일성이를 바라보는 것으로 끊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기 대한 대책으로는 할 수 있는 대로 일성이의 이야기를 무시하는 것으로 유일의 방책을 삼으려 하였다. |
| 그 뒤부터는 할 수 있는 대로 현숙이는 영옥이와 이야기를 하였다. 영옥이의 이야기가 끊어질 기회를 피하였다. 이리하여 일성이의 입을 봉하려고 하였다. |
| 그러다가 기회를 엿보아 가지고 어머님이 기다리시겠다는 것을 구실삼아 가지고 영옥이를 큰댁으로 올려보내었다. 일성이도 문밖까지 쫓아나와서 영옥이를 보냈다. |
| 영옥 씨 혹은 오늘 저녁에 “ , 제가 실례된 일이 있을지라도 그다지 나쁘게 생각치 말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본시 제 성미가 예절이라는 건 모르니깐요― 그럼 또 ―.” |
| “안녕히 계세요. 응 ― 언니 내일 강습회에서.” |
| 이렇게 영옥이를 보낸 뒤에 남매는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제각기 전투를 준비하면서 ―. |
| “누님 노하셌소?” |
| 방 안에 들어오면서 일성이는 웃으며 이 말부터 물었다. 현숙이는 대답치 않았다. |
| “자미있는 작자인데 ― 누님, 어때요 내 교제술이?” |
| “용하더라. 기껏 경멸은 샀으리라.” |
| “경멸?” |
| 일성이는 오히려 의외라는 얼굴을 하였다. |
| “좌우간 작자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겠읍니까? 어디 알아보세요.” |
| “극도로 나쁜 인상이야 주었지.” |
| “만세. 용하외다. 그게 내 목적이니깐.” |
| 현숙이는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얼굴을 하였다. |
| “여자에게는 초대면에 깊은 인상을 줘야 해요. 나쁜 인상이고 좋은 인상이고 간에 초대면에 기껏 깊은 인상을 박아 놓아야 합니다그려. 여자는 인상의 심천(深淺)은 절대로 변경 안하지만 선악(善惡)은 몇 번이라도 변경합니다그려. 인제 작자 ― 영옥이 말이외다 ― 영옥이를 언제 다시 만나서 그때 좀 내가 아롱아롱해 보구료. 그러기만 하면 아직껏 박혀 있던 나쁜 인상이 확 돌아와서 좋은 인상으로 되지 않나. 아마 전번에는 내가 이 어른을 잘못 봤었나 보다 하고 오히려 제가 미안해하지 않나? 그러니깐 좋고 나쁘고 간에 첫번에 깊이는 인상을 남겨 둬야 합니다그려. 깊게 남기기 위해서는 좋은 편보다 나쁜 편이 더 손쉽지 않아요? 그것도 작자들의 자존심을 꺾는다든가 수치를 준다든가 하면 모르지만….” |
| 이 일성이의 말에 팔 분의 진리를 인정은 하였지만 ― 아니 인정하였으므로 현숙이는 더 불유쾌하여졌다. |
| “언제 영옥이와 다시 만날 기회를 지어만 주구료.” |
| 현숙이는 거기 대답치 않았다. 그리고 한 걸음 내었다. |
| “대체 뭘 하러 상경했느냐? 의논하겠다는 것이 뭐냐?” |
| “참, 너절한 계집애 때문에 귀한 일을 잊을 뻔했군. 누님, 돈 좀 취해 주시오.” |
| “돈은 웬 돈이냐, 얼마 말이냐?” |
| “대체, 이 집 재산이 얼마나 됩니까?” |
| 일성이는 대답키 전에 다른 문제를 꺼냈다. |
| “이 집 재산이야 내가 알겠니? 또 알기로서니 아직 어머님이 생존해 계셔서 모두 잡고 계시고 너희 형님부터가 매달 연구소에서 받는 월급으로 집안을 지탱해 나가는데 웬 여유가 있겠냐?” |
| 동생에게 대한 불유쾌한 감정은 그로 하여금 이 집안의 재산 상태를 필요 이상 낮게 말하지 않을 수가 없게 하였다. |
| “그래도 필요가 있을 때는 큰댁에서 임시로 얻어올 수 있겠지요.” |
| “그건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 처남의 용돈까지는 안 대주리라.” |
| 일성이는 고소하였다 ―. |
| “누님께도 가정을 살 비용을 얼마 맡아 둔 게 있겠지요.” |
| “좀야 있겠지.” |
| “대체 얼마나 맡아 두셨소?” |
| “너는 대체 얼마나 필요하냐?” |
| 이러한 문답하에 일성이는 겨우 자기의 필요한 금액을 말하였다. 그리고 그 금액은 현숙이의 생각하였던 바와는 너무 액수가 틀리는 많은 돈으로서 현숙이도 그 금액에는 처음에는 자기의 귀를 의심치 않을 수 없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