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행 - 04

십 원, 이십 원, 잘하면 삼십 원까지는 부를 테고 그만하면 거기 절반쯤 꺾어서 주리라고 생각하였던 현숙이에게 천 원이라 하는 돈은 제 귀를 의심치 않을 수 없는 만한 뜻밖엣 거액이었었다.
이 뜻밖엣 거액을 정신 있는 소리로는 도저히 들을 수가 없은 현숙이는,
“집을 사려느냐?”
이렇게 물을 수밖에는 없었다. 거기 대답치 않은 일성이는 다른 말을 꺼내었다 ―.
“누님, 나는 그 새 인천 있지 않았다우.”
“그럼 어디 있었냐?”
“봉천.”
현숙이의 얼굴은 한순간 변하였다.
그리고 “ 대련 ― 여기저기 떠돌아다녔지요. 벌써 반 년 전부터.”
“어머니는?”
“모르지요. 아마 인천 그냥 있을 테지 ― 그리고 서울 온 지도 벌써 나흘 이야요. 나흘 동안을 이 집을 찾느라고…”
“이 집은 누이한테 돈 천 원을 따내려고?”
“네.”
불유쾌에서 노여움으로 노여움에서 다시 불유쾌로 ― 이렇게 움직이는 현숙이의 마음은 여기서 다만 경멸의 생각 밖에는 남지 않았다.
“누가 주겠다디?”
“누님이 주지요.”
어떤 확신을 가진 듯이 일성이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천 원을?”
“네.”
현숙이는 어이없어서 웃었다.
“천 원은 대체 뭘 하겠느냐. 논을 사겠느냐 밭을 사겠느냐.”
“마누라를.”
“무얼?”
“그 새 대련서 어떤 중국 처녀하고 약혼을 했는데 혼례 비용이 없어서 나왔읍니다.”
“그래서 그 혼례 비용을 나한테 따내겠단 말이냐?”
“네, 말하자면 ―.”
“나는 아직 천 원이란 돈을 쥐어 보지도 못한 사람이다. 또 설혹 있다 해두 그런 데는 내줄 수 없다. 그만치 알아 둬라.”
“누님한테야 없다 해두, 용언 형님한테야 있겠지요?”
“얘 ― 야, 네가 정신이 있느냐 없느냐, 너희 형님을 어린애로 아느냐?”
“아 ― 니오. 당당한 어른으로 신사로 알지요. 그러기에 처남의 일신상의 중대한 문제에는 천 원은 내줄 줄 알고 찾지요.”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현숙이는 대척치 않았다.
“안 줄까요.”
“줄 듯싶으냐?”
“그러면 만약 누님의 일신상의 중대한 문제라면 그래도 안 내줄까요?”
현숙이는 대답치 않고 일어섰다. 그리고 벽장을 열고 거기서 손철궤를 꺼내어 소절수책을 얻어내어 가지고 거기다가 오십 원을 써서 도장을 찍었다.
이것은 현숙이로서는 커다란 용단이었었다. 그 돈은 현숙이의 마음대로 쓰라고 맡겨 둔 돈이었었지만 그는 아직껏 남편과 의논이 없이 돈을 찾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차차 불유쾌함이 더하여 온 그는 얼른 이것을 주어서 일성이를 쫓아 보내려는 마음에 다른 생각은 할 여유도 없었다. 천 원 청구에 십 원 내외로써 물리칠 수 없은 그는 오십 원을 쓴 것이었었다.
현숙이의 내어주는 소절수를 받은 일성이는 먼저 그 금액을 보았다.
“오십 원이얘요?”
“응.”
“나머지 구백오십 원은?”
“모른다.”
현숙이는 잡아떼었다.
“몰라요?”
“몰라.”
“언제 주실 테야요?”
“몰라.”
일성이의 얼굴은 문득 험하여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헤헤 하고 웃었다.
“누님 왜 그러우? 하나 밖에 없는 동생 아니오? 용언 씨로 말하더라두 최씨 집안에서 처녀를 하나 데려온 이상에야 그 집안에 다른 처녀를 데려들이는 데 반대는 없겠지요.”
누이를 팔아서 안해를 얻겠다는 말로밖에는 볼 수 없는 이 말에 현숙이의 성은 마침내 폭발하였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여졌다. 입술과 손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