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행 - 01

일청전쟁이 끝나고, 일본은 그 전쟁에 이겼다고 온 백성이 기쁨에 넘치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때였다. 동양에도 이름도 없는 조그만 섬나라 ― 부락과 부락의 전쟁뿐으로서 그 역사를 지어내려 오던 나라 ― 종교와, 예의와, 법칙과, 학문과, 기술을 인국(隣國) 신라, 고구려, 대당(大唐) 등에서 조금씩 꾸어다가 때움질하여 오던 ×나라, 그 나라가 통일이 되고 정돈이 된 지 삼십 년도 못 되는 이때에, 대담히도 세계에 찬란히 이름난 대청국(大淸國)에게 싸움을 걸어서 이겼다 하는 것은, 과연 당시에 온 세계를 놀라게 한 큰 사실인 동시에, 그만치 일본 국민에게는 기쁜 일에 다름없었다.
그리하여, 온 일본 국민이 넘치는 기쁨을 막지 못하여, 가사를 내어던지고, 영업을 내어던지고, 춤추고 날뛸 때에, 무장야(武蔵野)의 어떤 벌판에 온전히 인간계의 그런 잡된 일을 초월한 듯이 한가히 날아다니던 범나비가 한 마리 있었다.
그 범나비는 고요하고 깨끗한 자리를 한 군데 찾아서, 거기 몇 알의 알을 쓸어 놓았다.
알은 벌레로 변하엿다.
거미와 새, ― 온갖 자기를 해하는 동물들을 피하여서, 이 풀잎에서 저 풀잎으로 몸을 숨겨서 다니던 벌레의 한 마리는, 제 형제의 대부분이 피식(被食)을 당할 때에도 몸을 온전히 하여, 수렁이로 변하게까지 되었다.
겨울이 이르렀다. 찬 서리와 눈도 그의 생활력을 해하지 못하였다. 얼음과 찬 바람도 땅속에 깊이 숨은 그를 어찌하지 못하였다.
이리하여 긴 겨울이 지나고 만물이 다시 살아나는 새로운 봄에 그는, 한 개의 아름다운 범나비로 화하여 가지고 세상에 나타났다.
날개의 시험의 며칠이 지난 뒤에, 그는 방랑의 여정을 나섰다. 동에서, 서에서, 그의 아름다운 자태는 무시로 보였다. 자기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듯이 또는, 봄의 아름다움을 찬송하는 듯이 남으로, 북으로 꽃마다 잎마다 키스의 자리를 남기면서, 정처없이 날아다녔다.
이렇게 끝없는 방랑을 즐기던 그는 차차 차차 날아서 팔왕자(八王子)의 촌락까지 이르렀다.
지금은 그만치 번화한 팔왕자이지만 당시에는 아주 쓸쓸한 한 촌락이었었다.
이 팔왕자의 하늘을 날아다니던 그는, 어떠한 집 뜰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발견하고 거기를 향하여 일직선으로 내려갔다.
그 집 여섯 살 난 어린애는, 어머니가 저녁을 지으려 나간 틈에 방 안에서 혼자 장난을 하고 있다가 뜰로 내려오던 아름다운 범나비를 보고 그것을 잡으러 뛰어나왔다. 그러나, 위만 쳐다보고 나오던 그는 세 걸음만에 그만 불을 이럭이럭 피워 놓은 화로를 박차고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달려왔을 때는 어린애는 얼굴과 온몸이 불로 데어서, 참혹히 도 기절을 한 때였었다.
범나비의 아무 뜻도 없는 이 소여행(小旅行)은 여기에 그 첫 비극을 일으켰다.
기차의 기관수인 어린애의 아버지는, 이틀 밤낮을 꼭 자기의 죽어 가는 외아들의 곁을 떠나지를 않고 간호하였다. 그러나 운명이라 하는 커다란 힘은 사람의 손으로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어린애는, 사흘째 되는 새벽, 마침내 풍을 일으켜 죽어 버렸다.
하관(下關)가는 급행열차가 신교역(新橋驛)을 떠났다. 기관수는 죽은 어린애의 아버지.
눈을 멀거니 뜨고 있는 그의 앞에는, 죽은 애의 형용이 어릿거렸다. 사흘을 한잠을 안 잤지만, 졸음만 안 올 뿐더러 정신은 더욱 똑똑하여졌다. 그러나 그는 아무러한 이해력도 없었다. 모든 일이 자기게는 무의미하다는 이해력조차 그에게는 없었다. 마땅히 정거하여야 할 정거장을 그냥 지나려다가 조수에게 주의를 받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었다. 급각도(急角度)에 도전속력으로 가서(차장을 통하여) 손님에게 꾸중을 들은 일도 몇 번 있었다.
그러나 그 주의 그 꾸중이 모두 두 초만 지나면 스러져 버리고 잊어버려져서, 그는 물고기의 눈과 같은 정신없는 눈으로 다만 꺼벅꺼벅 앞을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었다. 기차는 한 번도 제 시간에 정거장에 들어서 본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 기차가 신호(神戶)에 거진 이르러서 어떤 커브를 돌 때에, 가장 큰 비극은 일어났다.
덜걱! 소리와 함께 기관차는 선로를 벗어나서 뒤에 달린 십여 량(輛)의 객차와 함께 두어 길 되는 벼랑에서 떨어졌다.
부르짖음 신음하는 , 소리, 의미없는 고함소리, ― 일본 철도사에 공전(空前)이요 또한 절후(絶後)일 떨릴 비극은 일어났다. 당시의 신문을 보건대 즉사자 이백칠십여 명, 생명이 위독한 중상자 백여 명, 그저 중상자 백여 명, 무상자(無傷者) 한 사람도 없었다고 보고되었다.
그리고 그 생명이 위독한 중상자 가운데는 조선 사람 서모(徐某) 이십일 세라는 이름이 있었고, 보통 중상자 가운데 조선 여자 신함라(申咸羅) 십구 세라는 이름이 있었다.
그 비극의 결과로 생겨난 부산 비극(副産悲劇)은 몹시 컸다. 일청(日淸) 교섭의 어떤 임무를 띤 대관(大官)의 즉사로 대지 문제(對支問題)의 원활히 못 된 일이며, 재계의 거두의 중상으로 바야흐로 진출하려던 일본 무역의 받은 영향 등 표면상에 나타난 문제는 둘째로 두고, 그 가운데는 무론 호주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상속 문제로 분규가 일어난 가정도 있었을 것이었었다. 애인의 무참한 죽음에 발광하여 폐인이 된 젊은이도 있을 것이었었다.
이 사실로 새삼스러이 인간무상을 느끼어 입도(入道)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를 것이었었다. 비극, 비극, 그리고 또 비극이 낳은 또 다시 비극. 결과는 또한 그 다음 결과를 낳고, 다음 결과는 또 새로운 결과를 낳아서, 지금 일본 ― 뿐 아니라 온 세계에 그 결과의 또한 결과가 얼마나 영향되었는지 그것은 짐작도 못할 배다.
내가 무심히 강물을 향하여 돌을 하나 던진다.
그때에 그 강물에 생긴 물결이 퍼지고 퍼져서, 넓은 바다까지 이르러, 거기 일어나는 커다란 뫼와 같은 물결에 만분 일(萬分一)의 방해, 혹은 조력을 할는지 그것은 결코 예측도 못할 일이다. 그리고 또한 그 돌이 강바닥까지 내려져서 강바닥의 모래를 움직여 그것이 몇 만 년 뒤에 그 강으로서 십 리쯤 동으로 혹은 서로 옮겨가게 할 동기가 될는지도 예측도 못할 일이다.
이 세상의 한끝으로 생겨 나고 한끝으로 사라지는 백 가지의 일의, 그 가장 변변치 않는 한 가지라도 그 결과의 또 한 결과를 생각할 때에, 우리는 결코 숙명의 커다란 힘을 업수이 여기지 못할지니 무장야(武蔵野)의 너른 드을에서 자유로이 놀던 나비 한 마리가 우연히 아무 뜻 없이 팔 왕자(八王子)까지 날아온 것이 사흘 뒤에는 벌써 이렇듯 커다란 비극을 일으켜 놓았다. 그리고 그 비극은 결코 거기서 막을 닫치지 않았다.
나비의 여행, 벌판에서 팔왕자 촌락까지. 그것은 아무 뜻도 없는 것이었었다.
그러나 그 나비의 , 아무 뜻도 없는 소여행(小旅行)이, 삼십 년이라는 기다란 날짜를 지난 뒤에 조선에서 어떠한 결과로 나타났나? 어떠한 비극, 어떠한 희극, 어떠한 활극이 그 나비의 변변치 않은 행동의 결과로서 나타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