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행 - 12

― 언니, 당신은 모릅니다. 이렇게 말하면 실언 같을지는 모르지만 부부 관계라 하는 것은 당신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간단하고 명료한 것이 아닙니다. 일찌기 과수가 된 당신은 경험하였을 수가 없는 허다한 델리케이트한 문제가 그 안에 수없이 있읍니다. 나도 처녀 시절에는 일찌기 당신과 같은 생각이었었읍니다. 그러나 세상의 온갖 문제보다도 가장 델리케이트한 부부 문제는 공상과 이론뿐으로는 도저히 판단을 허락지 않는 뜻밖에 어려운 일이 많이 있읍니다. 당신이 사랑하던 이 동생도 지긋지긋한 그 문제에 부딪쳐서 고민하고 있읍니다. 그리고 그 판단을 당신에게 얻으려고 온 것입니다.
“너 부부싸움이라도 한 모양이구나.”
현숙이는 잠자코 얼굴을 쳐다볼 뿐 다시 머리를 숙였다.
“안했어? 안했으면 새삼스럽게 부부 관계를 물어 볼 게 웬 일이냐?”
“언니.”
“왜?”
“부부의 화합은 어디서 생겨 날까요?”
“서로 숨김이 없는 데서.”
현숙이는 한숨을 쉬었다.
“그것이면 그뿐일까요?”
“그럼.”
그것은 지금부터 오 년 전 현숙이는 열여덟 일성이는 열다섯 살 난 해의 여름이었었다. 그 해의 하기방학을 이용하여 마침 인천 어머니의 집에 현숙이는 가 있었다.
그 어느 날 그의 집에는 한 장의 전보가 왔다.
전보는커녕 보통 편지라는 것조차 인숙에게서나 오지 그 밖에서는 올 일이 없는 이 집에는 전보는 과연 뜻밖엣 것이었었다.
그 전보는 열 몇 해를 음신 불통으로 있던 현숙이의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었다. 그 전보에는 자기의 병의 위태함과 돈을 좀 보내라는 두 가지의 사연이 있고 발신(發信)한 곳은 봉천 송죽 여관이라 하였다.
세상의 온갖 군잡스러운 일을 초월한 듯이 아무런 일도 무심히 지내는 어머니는 역시 이 전보에도 대척치 않았다.
“봉천 있었나?”
어머니는 이 한 마디로 모든 일은 다 해결된 셈을 쳤다. 그러나 현숙이는 그렇게 무심히 지나지 못할 것같이 생각되었다. 설혹 아버지의 얼굴조차 똑똑히 기억 못하며 아무런 정애도 가지지 않았다 하나 그래도 자기가 피를 받은 아버지에게 너무 무심히 지나는 것은 마음에 켕기었다. 더구나 객지에서 병이 위독하다는 아버지를 생각할 때에는 의리상 어떻게든 가 보아야 할 것 같이 생각되었다.
그는 어머니를 달래어서 얼마의 돈을 준비하여 가지고 일성이와 같이 봉천을 향하여 떠났다. 그러나 그들 남매가 급기 봉천까지 도착하여 송죽 여관을 찾아갔을 때는 그의 아버지는 송죽 여관에 있지 않았다. 그는 절도라는 죄목으로 영사관 경찰의 신세를 지고 있던 것이었었다.
거기서 현숙이의 남매가 안 바는 그들의 아버지라 하는 사람은 다시 사람이 될 가망이 절대로 없는 아편장이며 그 아편의 비용을 구하기 위하여 절도 협박 공갈 구걸 , , , , 온갖 일을 다 거리낌 없이 행하는 사람이며 이번에도 여관 곁방에 든 사람의 행장을 도적하고 그것이 발각되어 경찰의 손에 잡혔다 하는 것이었었다. 그런지라 짐작컨대 그가 인천 본집에 자기의 병이 위독하다고 전보를 놓은 것도 돈을 좀 어떻게 구하여 보려던 최후의 수단으로밖에는 볼 수가 없었다. 여관 주인의 말로 듣더라도 그는 아무 병도 앓은 일이 없다 한다.
그 말 때문에 몹시 수치를 느낀 현숙이는 그 날 밤차로 귀국할까 하였다.
그러나 인정상 자기가 피를 받은 아버지가 이 낯선 땅에 영어의 인(囹圄人) 이 되어 있다는 것을 몰랐으면여니와 알고 ― 더구나 그를 위하여 가지고 왔던 돈도 있는 이상에야 그냥 돌아간다는 것은 너무도 무심한 듯하였다.
그래서 우선 그날 저녁 차입을 부탁하고 이튿날 면회라도 한 번 하고 갈 양으로 그 송죽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하였다. 아무리 집안을 모르고 인정을 모르고 의리를 모르고 자식조차 모르는 아버질지라도 현숙이는 자기의 심리로써 짜아내어 내일 아버지를 면회할 때에는 아버지의 눈에서도 마땅히 흐를 몇 줄기의 눈물을 예상하였다. 그리고 그 극적(劇的) 씬 때문에 현숙이의 마음에로 일종의 외로운 듯한 정애가 일어났다.
“일성아, 우리 오늘 여기서 묵고 내일 아버지나 한 번 만나 보고 가자.”
어린 동생을 향하여 이렇게 말할 때에는 감격키 쉬운 시절의 처녀인 현숙이는 코까지 메었다. 그리고 그의 마음에는 사랑이며 미음이며 이런 문제를 제외하고 어버이와 자식 간에 마땅히 있어야 할 정의와 의리와 한 걸음 더 나가서 신뢰까지 느꼈다.
이리하여 이 남매는 봉천 송죽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게가 되었다.
그날 밤 현숙이는 잘 잠이 들지 못하였다.
조선 사람이 경영하는 그 송죽 여관은 조선식의 집이었었다. 대문을 들어서서 사무실이 있고 가운데 네모난 뜰을 둘러서 조그마큼씩한 객실이 마치 진(陣)과 같이 놓여 있었다. 따라서 그 객실에는 끝방과 첫방의 구별이 없지만 현숙이의 남매가 묵어 있는 방은 모퉁이 방이었었다.
여관에는 손님이 많았다. 옷뿐으로는 그 국적조차 분간키 힘들도록 조선옷 청복 일복 양복 등의 가지각색 옷이 다 있었으며 현숙이와 같은 여자에게는 그들의 직업은 짐작도 할 수가 없었다. 무역, 밀수입, ‘만슈고로(滿州 浮浪者)’― 그들을 바라보고 현숙이는 어렴풋이 이렇게 느꼈을 뿐이었었다.
저녁 뒤에는 잠시 조용하였던 여관이 밤 열한시경부터는 다시 소요하기 시작하였다 방출입을 하였던 . 손들이 돌아들 오는 모양이었었다. 한 사람 두 사람씩 차차 뜰에는 사람의 수효가 늘어 가고 그 가운데는 술취한 사람도 몇이 있는 모양으로 혀 꼬부라진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거친 만주에서는 보기가 힘든 고국의 여학생이 한 명 자기네와 같은 여관에 묵어 있다는 것을 통절히 느낀 모양으로써 부러운 소리로 지껄이며 어떤 때는 현숙이의 방 앞에까지 와서 소요스럽게 굴었다. 돈을 많이 뿌려 본 자랑이며 자기의 호협한 행동이며 여자를 후리던 경험담이며 어떤 때는 정면으로 도저히 듣지를 못할 음탕스러운 이야기까지 있었다. 그런 뒤에는 우습지도 않은 일에 큰 소리로 웃고 하였다.
‘야비스럽다.’ 현숙이의 호기심을 일으키고자 지껄이는 그들의 이야기는 현숙이에게는 이 한 마디로써 비평이 끝나는 행동이었었다. 현숙이는 몇 번을 혀를 차며 속으로 성을 연거푸 내며 이리로 돌아누웠다 저리로 돌아누웠다 하였다. 이런 야만의 곳을 저녁차로 달아나 버리지 않은 후회까지 하였다.
한시가 지난 뒤에는 여관도 조용하여졌다. 때때로 멀리서 놀란 듯한 기적 소리가 들리고 저편 길 모퉁이에서 밤손님의 구루마 부르는 소리가 간간 들릴 뿐이었었다. 그러나 아까의 성가심 때문에 몹시 신경이 날카롭게 된 현숙이는 그냥 잠을 못 들었다. 아까 낮에는 몹시도 느끼던 피곤함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의 머리는 더욱 똑똑하여졌다. 잠이라는 것은 사람이 과연 자야 되는 것인지, 자기도 장차 언제 잠이 올 때가 있을는지 이런 생각조차 나게 되었다. 두시를 치는 소리도 들렸다. 그 두시를 들은지 얼마하지 않아서 세시를 치는 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현숙이도 마침내 잠이 들었다. 세시를 치는 소리를 들은 뒤에 좀 있다가 길에 지나가는 사람의 쿵쿵거리는 발소리를 꿈결같이 들은 뒤에 그도 잠이 든 것이었었다.
이렇게 겨우 잠이 들게 되었던 그는 무슨 괴상한 압박을 느끼면서 화닥닥 깨었다. 정신이 들면서 보니까 무슨 천 근 같은 무게가 그의 가슴을 내려 누르고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몸버둥이를 쳐 보았다. 그러나 소란스럽게 굴어서 당연히 생겨 날 창피스럼이 휙 머리의 한편을 스치고 지나간 순간 그는 다만 몸을 힘껏 트는 것으로써 그 힘을 대항하려 하였다. 그의 몸은 사시나무와 같이 떨렸다.
좀 뒤에 정신을 수습하고 현숙이가 제일 첫 번으로 눈을 던진 것은 저 편에 누워 있는 동생 일성이의 위에였었다. 일성이는 숨소리 고요히 잠이 들어 있었다.
거기 얼마만치 안심을 느낀 그는 그 안심과 함께 갑자기 일어나는 공포와 설움 때문에 그 자리에 엎딘 채로 몸을 고민하듯이 떨면서 느껴울다가 새벽 아직 어두워서 일성이를 깨워 가지고 그 여관에 세음을 치르고 빠져나와서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이것이 현숙이의 비밀이었었다.
생각도 안하였을 때에 알지도 못하는 사람 때문에 그의 처녀는 깨어져 나갔다.
그 뒤 오 년간 현숙이는 늘 그것 때문에 남 모르게 고민하였다. 말하자면 이 너른 세상에 자기 혼자 밖에는 알 사람이 없는 비밀로서 자기만 발설치 않으면 세상에 뉘라서 알 길이 없는 일이로되 그렇다고 자기까지는 속일 수가 없었다. 처녀의 정조라 하는 것은 결코 그것으로써 남에게 대항하고 남에게 자랑하고 남에게 존경을 받는 무기에 쓸 것이 아니고 남편이라는 사람이 생기기까지의 시기를 자기 혼자서 감추어 가지고 혼자서 만족히 여길 것이라는 것이 현숙이의 생각이었었다. 따라서 아무리 처녀의 정조는 잃었을망정 남만 감쪽같이 속이고 남에게만 처녀로 보였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현숙이로서는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용언에게로 시집을 간 이래로 그 생각은 나날이 더하여 갔다. 그리고 그 고민 때문에 도저히 더 참지 못하도록 어려울 때마다 탁 이 비밀을 남편의 앞에 자백하여 버릴까 하는 생각도 늘 하여보았다.
그것을 자백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비록 말하기가 힘들기는 하나 그것을 감추어 두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받을 고민을 생각하면 손쉽게 털어 내는 것은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닐 것이었다.
그것을 한 번 자백을 하여버리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로되 그 뒤에 생겨 날 남편의 번민에 생각이 미칠 때에는 현숙이는 도저히 그것을 자백할 용기가 안 생겼다. 처녀로만 굳게 믿고 있던 자기의 안해가 비록 그 마음에 있어는 한 점의 티도 없는 맑은 처녀로되 몸으로써 자기이외의 다른 사내와 접한 일이 있다 하는 것은 남편 된 자의 결코 유쾌할 사실이 아닐 것이다. 일생 가운데 한 번 밖에는 경험할 수가 없는 ‘상대자의 동정(童貞’)이라는 것이 벌써 다른 사람에게 밟힌 바가 되었으며 당연히 그 동정을 소유할 자기는 다만 한낱 몸집을 소유한 데 지나지 못한다 하는 것은 결코 남편 된 자의 유쾌할 사실이 아닐 것이다. 삼십 년 동안을 고이고이 지켜 두었던 자기의 동정을 그대로 안해에게 바친 남편이 안해에게서 그 보수로서 동정의 제공을 받지 못하였다 하는 것은 결코 남편 된 자의 유쾌할 사실이 아닐 것이다. 만약 자기의 안해가(비록 마음에는 없었다 하나) 일찌기 다른 사내와 접한 일이 있다 하는 것을 알면은 남편 된 자의 마음은 결코 유쾌하지를 못할 것이다. 거기는 커다란 불만과 분노와 번민이 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불만은 일생에 한 번 밖에는 없을 동정(童貞)에 관한 것이니만치 일생을 통하여 계속될 불만이며 또한 일생을 통하여 도저히 위로하거나 만족을 줄 수가 없는 불만일 것이다. 여기서 몇 번을 거의 입밖까지 나왔던 자백을 현숙이는 그 대번 도로 움쳐들인 것이었었다.
‘벌(罰)은 죄인에게.’ ‘비밀을 가진 여인’이라는 가장 불유쾌하고 창피하고 더럽고 따라서 불쾌한 이름을 스스로 제 위에 올려놓기로 마침내 결심치 않을 수 없은 그는 그 때문에 생겨 나는 고통도 또한 감쪽같이 감추어 가지고 자기 혼자서 괴로워할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이리하여 한 가지의 고통을 피하기 위하여 또 한가지의 고통을 자진하여 산 현숙이는 이 두 가지의 고통 아래서 피곤한 몸과 마음을 남편의 지극한 사랑 안에 쉬며 자기도 또한 그 속죄를 겸하여 정성에 정성을 다하여 남편을 섬기던 것이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