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간 형용할 수 없는 외로움이 폭풍우와 같이 그의 마음을 습격하였다. 약한 한숨이 그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
| 인숙이는 동생을 보았다. |
| “와서 무슨 이야길 하디?” |
| “무얼, 별 이야긴 없어요.” |
| “그럼 공연히 왔단 말인가?” |
| “글쎄.” |
| 이제 인숙이가 물은 바 ‘공연히 상경을 했느냐’던 말은 또한 현숙이가 어제 저녁에 제 동생에게 향해서 묻던 그 질문이었었다. 현숙이는 일성이에게 그 질문을 하고 대답으로서는 돈 천 원의 청구를 받은 것이었었다. 그 천 원을 마련하기 위하여 오늘 형을 찾아온 현숙이는 형에게서 ‘일성이가 왜 상경을 하였느냐’는 질문에 글쎄 하는 똑똑치 않은 대답을 할 뿐이었었다. |
| “어머님은 안녕히 계시다디?” |
| “글쎄.” |
| “글쎄란? 그럼 물어도 안 보았니?” |
| “그 애는 그 새 집에 있지도 않았답디다.” |
| “그럼 어디 있었다디?” |
| 봉천이라고 대답하려던 현숙이는 그만 ‘만주’라고 대답하여 버렸다. |
| 봉천이라는 것은 현숙이에게는 입에도 내기 싫은 땅이었었다. |
| “만주? 만주서 ― 마적의 부하라도 됐다디?” |
| “….” |
| “그래 어머니 혼자 버려 두고 돌아다닌 것을 좀 꾸중이라도 안했니?” |
| 현숙이는 머리를 들어서 천천히 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현숙이의 눈에는 원망의 기색이 있었다. |
| 인숙이가 현숙이의 마음을 알아채었다. |
| “그런데, 네가 꾸지람을 한 대야 들을 애는 아니야. 참 딱한 애로군.” |
| 형은 이만치 비평을 한 뒤에 천천히 그 문제를 집어치웠다. 그러나 현숙이는 형의 그 말을 결코 듣고 있던 바가 아니었다. 그의 마음은 차차 긴장되어 왔다. 인제 장차 자기 입에서 나와야 할 말 때문에 그의 마음은 마치 죽 끓듯 끓고 있었다. 천하가 태평한 듯이 쾌활히 이야기하는 형의 앞에 그 문제를 끄을어내면 형은 어떻게 대답할까. 그리고 어떻게 처리할까. 대답보다도 처리, 처리보다도 ― 그 이야기를 끄을어낼 실마리에 현숙이는 더욱 애를 썼다. 수그리고 있는 머리는 차차 더 내려왔다. |
|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현숙이는 머리를 들었다 ―. |
| “언니.” |
| “왜.” |
| “돈 천 원만 취해 주구료.” |
| 인숙이는 눈을 딱 바로 떴다. 그의 얼굴에도 경악의 그림자가 나타나 있었다. |
| “천 원?” |
| “네.” |
| 현숙이의 소리는 듣기가 힘들었다. |
| “무엇에 쓰려느냐?” |
| “좀….” |
| “남편의 승낙은 있느냐?” |
| 현숙이는 머리를 저었다. |
| “그럼 못 주겠다.” |
| 그럼 못 주겠다고 한 마디로 거절한 인숙이의 말에는 동정도 침착도 없었다. 거기는 간단한 거절이 있을 따름이었었다. |
| 세상의 만사가 이론대로 진행되는 것이라 하면 여기서 현숙이는 당연히 비쭉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었다. 적어도 그의 눈은 노여움으로 빛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었다. 시집간 동생이 처음으로 나들이를 와서 청구하는 그 돈을 사정도 알아보기도 전에 너무도 냉담하게 잡아떼는 형의 태도에 그는 당연히 반감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었다. 유린 당한 자기의 자존심을 보호하기 위하여서라도 적어도 그는 원망의 눈초리라도 형에게 던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었다. |
|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안하였다. 그리고 ― 머리를 깊이 가슴에 묻은 뒤에 묵묵히 앉아 있었다. |
| 형이 다시 입을 열었다. |
| 못써 안해가 남편에게 “ . 의논 없이 돈을 쓴다는 것은 못써. 그맛 지각은 있는 줄 알았더니, 그럼 내가 너를 잘못 보았던 모양이구나.” |
| 현숙이는 역시 대답치를 못하였다. |
| 이렇게 말하는 바를 자기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었다. 아직껏 자기는 추호만한 일일지라도 남편에게 감춘다든가 남편이 모르게 행한 일이 절대로 없었다. 그러나 이 일뿐에는 예외가 있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결코 자기를 위하여 하는 일이 아니라 남편의 마음에 불유쾌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려 그가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행하는 최후의 수단이요 최선의 수단에 다름 없었다. 이윽고 현숙이는 머리를 들었다. 조금 눈물기가 있는 그의 눈은 마치 수정과 같았다. |
| “언니.” |
| “?” |
| “대체 그 지아버니란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
| “남편은 남편.” |
| 인숙이의 결론은 간단하였다. |
| “안해라는 사람은?” |
| “안해는 안해.” |
| “두 사람의 관계는?” |
| “부부 관계.” |
| 인숙이의 결론은 더욱 간단하였다. 성격의 하나기보다 오히려 환경과 성장의 차이에서 생겨 난 이 결론은 이론으로서는 당연하였지만 현숙이는 그냥 그대로 머리를 끄덕이지 못할 점이 없지 않았다. 현숙이는 다시 머리를 수그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