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제는 안방으로 들어왔다. |
| 이 집에 발을 들여놓은 지 십오 분도 못 되지만 처음에는 ‘남의 집’이라는 일종의 가림이 있는 듯한 마음으로 들어섰던 현숙에게는 어느덧 차차 그 마음이 사라졌다. 안방에 발을 들여놓을 때는 현숙이의 마음에는 어느덧 시집간 지 반 년과 동경 학창생활을 사오 년을 건너뛰어서 이전의 소녀 시대의 자기를 발견한 듯한 애연하고도 쾌활한 마음을 가슴속에 느꼈다. 그는 담벽을 기대고 미끄러지듯이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기다랗게 팔과 다리를 버티었다. |
| “언니. 흐 ―.” |
| 그의 입에서는 여러 해 전에 부리던 어리광의 소리까지 나왔다. |
| 형은 동생을 보았다. 형의 눈에도 웃음이 있었다. |
| “살림하기가 곤하지?” |
| “곤하기야.” |
| “곤하느니라. 몸이 곤하다는 것보다 마음이 곤하느니라. 마음을 꼭 결박한 것같이.” |
| 현숙이는 그 말을 수고하였다. 동시에 아직껏 그다지 느껴 본 적이 없던 ‘살림살이’에 대한 자기의 것이 뜻밖에 어렵고 컸었던 것을 깨달았다. 바늘방석 ― 관대한 남편과 간단한 살림과 가정에 대한 전권을 잡고 있던 현숙이가 이론상으로 보자면 당연히 안 느낄 바의 ‘조심’이 뜻밖에 컸던 것을 현숙이는 처음으로 알았다. 그것은 바늘방석에 앉는 것과 같은 종류의 ‘조심’이었었다. 마음의 무장(武裝)을 잠시도 끌러 놓을 새가 없을이만치 조마조마하고 조심성스럽던 살림이었었다. 하루의 스물네 시간을 늘 마음의 무장을 단단히 하고 그 무장을 잠시도 풀어 본 적이 없었다. ‘훌륭한 사람’이라는 비평에 대하여는 끝없는 애착을 가지고 있는 현숙이는 자기의 온갖 지혜를 다하여 이 이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하였다. 그것은 극도로 긴장된 마음이었었다. 그리고 그는 오히려 이 긴장에서 즐거움과 유쾌함을 발견하는 것이었었다. |
| 오늘 갑자기 형에게서 ‘마음이 곤하겠다’는 위로를 받을 적에 현숙이는 아직껏 느껴 보지 않았던 그 ‘곤함’이 뜻밖에 컸던 데 오히려 뜻밖이라는 생각까지 난 것이었었다. |
| 인숙이는 웃음이 섞인 한숨을 쉬었다. |
| “그게 자미느니라. 그 자미가 없으면 누가 시집을 간다디. 서로 경쟁 ― 이라면 말이 좀 변하지만 ― 좌우간 서로 마음을 잔뜩 결박을 해가지고 말하자면 그것도 투쟁이지. 그 투쟁의 재미가 없으면 시집살이란 그런 싱거운 일이 없으리라. 하기는 형은 몇 달을 해보지는 못했다만 ― 하하하하.” |
| 사람의 생활의 가장 엄숙한 순간에 받는 생겨 나는 감정을 현숙이는 문득 느꼈다. 하하하 쾌활하게 웃는 형의 그 반면에는 몹시도 적적함을 발견치 않을 수가 없은 현숙이는 형을 따라서 웃기는커녕 아직 입가에 흐르던 웃음의 그림자조차 거두어 버렸다. 그리고 버티고 있던 다리를 가드러뜨리고 양 손을 맥없이 무릎 위에 던지면서 약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 가운데는 행복된 부부생활을 하는 동생이 과부 언니에게 가지는 동정이 섞여 있는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그 행복된 동생이 불행한 언니에게 대하여 장차 동정을 구하며 구원을 청하여야지 않을 수 없는 자기의 딱한 사정에 대한 근심도 섞여 있었다. |
| “아 ― 아.” |
| 한 마디 쾌활하게 웃은 언니는 그 웃음의 끝을 막으려는 듯이 역시 쾌활히 한숨을 쉬었다. |
| 현숙이는 점심도 그 집에서 먹었다. |
| 자기의 처녀 시절을 보낸 그 집은 온갖 정리로 보아서 현숙에게는 정다운 집이었었다. 자기가 그 집을 떠난 지 반 년이 지난 지금도 가구들의 놓임놓임이며 머리맡 영창 위에 걸어 둔 사진틀이며 그 아래 자기가 손수 만들어 걸어 둔 꽃이며 장판 방에 두어 곳에 자기가 쏟았던 잉크의 자국가지 그냥 있었다. |
| 현숙이는 거기서 풍부히 나는 자기의 처녀시절의 내음새를 맡았다. 즐겁던 약혼시절의 내음새를 맡았다. |
| ‘서(徐)’ 이러한 허수아비가 마침내 한 개의 사람으로서 ― 더구나 그의 약혼자로서 그의 앞에 나타났을 동안의 그 아름답고도 즐겁던 처녀 시절의 내음새를 풍부히 맡았다. 온몸을 녹이는 듯한 달콤한 공상에 잠겨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장래의 즐거운 결혼생활을 머리에 그리며 있던 그 시절 내음새를 풍부히 맡았다. 그 내음새는 장판 바닥에도 그냥 남아 있었다. 담벽에도 그냥 남아 있었다. 머리맡에 놓인 문갑에는 풍부히 그냥 남아 있었다. |
| 그 모든 공상이 오늘날 마침내 현실로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었었다. |
| 그것은 즐거운 가정이었었다. 남편은 안해를 사랑하였다. 안해는 남편을 사랑하였다. 그 사랑을 방해할 만한 아무런 방해도 없었다. 금전의 부자유는 없었다. 군잡스런 사람도 없었다. |
| 시집간 뒤로 그 공상과 현실의 새에 얼마의 차가 생긴 것은 사실이었었다. |
| 그러나 처녀시절에 앉아서 모든 아름다운 공상에 잠기던 그 찰나에도 그것이 그대로 현실로 나타나리라고는 믿지 않고 거기다가 얼마의 에누리를 하더니만치 이지적인 인숙에게는 부부생활이 비록 그래도 그 공상과는 얼마의 틀림이 있다 하나 거기 대하여는 아무 불만도 품지 않았다. |
| ‘공상을 포기하라.’ ‘현실을 끄을어올리라.’ 당연히 일어날 이러한 생각조차 그에게 생겨 보지를 않고 그 현실에 만족하였다. 그리고 그 현실을 잃지 않으려 자기의 지식과 지혜를 다하여 노력하였다. |
| 그렇거늘 오늘날 일성이라 하는 뜻하지 않은 방해물이 나타나서 현숙이의 행복된 현실에 한 점의 콤마를 찍어 놓은 것이었었다. |
| 점심 뒤에 가벼운 기분에 잠겨서 공상에서 공상으로 뛰어다니던 현숙이는 문득 일성이를 생각하고 펄떡 정신을 차렸다. 동시에 그의 입에서는 약한 한숨조차 새었다. |
| “언니, 무슨 이야길 하세요.” |
| “?” |
| “갑갑해 견디겠소? 이야기라두 하세요.” |
| “한참 덤비어 댔더니 이야기 주머니가 그만 말라 버렸구나.” |
| 그런 뒤에는 인숙이는 쾌활히 웃었다. |
| “그럼 내 할까?” |
| “하렴.” |
| “내니 할 이야기가 있어야지 ― 참 언니, 일성이 보셌소?” |
| 현숙이의 입에서는 마침내 일성이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나온 방법이 몹시도 서툴렀다. 다른 이야기 같으면 이렇듯 서툴게 말을 끄을어낼 그가 아니었었지만 그의 마음의 한편 구석을 커다랗게 점령하고 있는 오늘의 이 일에 대하여뿐은 그로서도 늘 사용하는 온갖 기교를 전부 포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 “일성이가 왔더냐?” |
| “네….” |
| “너희 집에?” |
| “네 ―.” |
| “그러고도 우리 집에는 오지를 않아?” |
| “언니한테는 안 오겠답디다.” |
| “왜?” |
| “늘 꾸지람만 한다나?” |
| 하하하하 그 애에게도 “ . 꾸지람은 싫은 모양이군. 그렇거든 왜 꾸지람을 안 듣도록 안해.” |
| 현숙이는 힐끗 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거기 나타나 있는 커다란 인격 앞에 뜻하지 않고 머리를 숙였다. 같은 손위 누이라 하나 현숙이에게는 노골적으로 협박을 하던 일성이가 이 맏누이 되는 인숙이에게는 저픔을 가지고 감히 찾아오기까지 꺼리던 것도 이 인격에 위압된 때문일 것이었 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