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행 - 10

형제는 안방으로 들어왔다.
이 집에 발을 들여놓은 지 십오 분도 못 되지만 처음에는 ‘남의 집’이라는 일종의 가림이 있는 듯한 마음으로 들어섰던 현숙에게는 어느덧 차차 그 마음이 사라졌다. 안방에 발을 들여놓을 때는 현숙이의 마음에는 어느덧 시집간 지 반 년과 동경 학창생활을 사오 년을 건너뛰어서 이전의 소녀 시대의 자기를 발견한 듯한 애연하고도 쾌활한 마음을 가슴속에 느꼈다. 그는 담벽을 기대고 미끄러지듯이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기다랗게 팔과 다리를 버티었다.
“언니. 흐 ―.”
그의 입에서는 여러 해 전에 부리던 어리광의 소리까지 나왔다.
형은 동생을 보았다. 형의 눈에도 웃음이 있었다.
“살림하기가 곤하지?”
“곤하기야.”
“곤하느니라. 몸이 곤하다는 것보다 마음이 곤하느니라. 마음을 꼭 결박한 것같이.”
현숙이는 그 말을 수고하였다. 동시에 아직껏 그다지 느껴 본 적이 없던 ‘살림살이’에 대한 자기의 것이 뜻밖에 어렵고 컸었던 것을 깨달았다. 바늘방석 ― 관대한 남편과 간단한 살림과 가정에 대한 전권을 잡고 있던 현숙이가 이론상으로 보자면 당연히 안 느낄 바의 ‘조심’이 뜻밖에 컸던 것을 현숙이는 처음으로 알았다. 그것은 바늘방석에 앉는 것과 같은 종류의 ‘조심’이었었다. 마음의 무장(武裝)을 잠시도 끌러 놓을 새가 없을이만치 조마조마하고 조심성스럽던 살림이었었다. 하루의 스물네 시간을 늘 마음의 무장을 단단히 하고 그 무장을 잠시도 풀어 본 적이 없었다. ‘훌륭한 사람’이라는 비평에 대하여는 끝없는 애착을 가지고 있는 현숙이는 자기의 온갖 지혜를 다하여 이 이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하였다. 그것은 극도로 긴장된 마음이었었다. 그리고 그는 오히려 이 긴장에서 즐거움과 유쾌함을 발견하는 것이었었다.
오늘 갑자기 형에게서 ‘마음이 곤하겠다’는 위로를 받을 적에 현숙이는 아직껏 느껴 보지 않았던 그 ‘곤함’이 뜻밖에 컸던 데 오히려 뜻밖이라는 생각까지 난 것이었었다.
인숙이는 웃음이 섞인 한숨을 쉬었다.
“그게 자미느니라. 그 자미가 없으면 누가 시집을 간다디. 서로 경쟁 ― 이라면 말이 좀 변하지만 ― 좌우간 서로 마음을 잔뜩 결박을 해가지고 말하자면 그것도 투쟁이지. 그 투쟁의 재미가 없으면 시집살이란 그런 싱거운 일이 없으리라. 하기는 형은 몇 달을 해보지는 못했다만 ― 하하하하.”
사람의 생활의 가장 엄숙한 순간에 받는 생겨 나는 감정을 현숙이는 문득 느꼈다. 하하하 쾌활하게 웃는 형의 그 반면에는 몹시도 적적함을 발견치 않을 수가 없은 현숙이는 형을 따라서 웃기는커녕 아직 입가에 흐르던 웃음의 그림자조차 거두어 버렸다. 그리고 버티고 있던 다리를 가드러뜨리고 양 손을 맥없이 무릎 위에 던지면서 약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 가운데는 행복된 부부생활을 하는 동생이 과부 언니에게 가지는 동정이 섞여 있는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그 행복된 동생이 불행한 언니에게 대하여 장차 동정을 구하며 구원을 청하여야지 않을 수 없는 자기의 딱한 사정에 대한 근심도 섞여 있었다.
“아 ― 아.”
한 마디 쾌활하게 웃은 언니는 그 웃음의 끝을 막으려는 듯이 역시 쾌활히 한숨을 쉬었다.
현숙이는 점심도 그 집에서 먹었다.
자기의 처녀 시절을 보낸 그 집은 온갖 정리로 보아서 현숙에게는 정다운 집이었었다. 자기가 그 집을 떠난 지 반 년이 지난 지금도 가구들의 놓임놓임이며 머리맡 영창 위에 걸어 둔 사진틀이며 그 아래 자기가 손수 만들어 걸어 둔 꽃이며 장판 방에 두어 곳에 자기가 쏟았던 잉크의 자국가지 그냥 있었다.
현숙이는 거기서 풍부히 나는 자기의 처녀시절의 내음새를 맡았다. 즐겁던 약혼시절의 내음새를 맡았다.
‘서(徐)’ 이러한 허수아비가 마침내 한 개의 사람으로서 ― 더구나 그의 약혼자로서 그의 앞에 나타났을 동안의 그 아름답고도 즐겁던 처녀 시절의 내음새를 풍부히 맡았다. 온몸을 녹이는 듯한 달콤한 공상에 잠겨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장래의 즐거운 결혼생활을 머리에 그리며 있던 그 시절 내음새를 풍부히 맡았다. 그 내음새는 장판 바닥에도 그냥 남아 있었다. 담벽에도 그냥 남아 있었다. 머리맡에 놓인 문갑에는 풍부히 그냥 남아 있었다.
그 모든 공상이 오늘날 마침내 현실로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었었다.
그것은 즐거운 가정이었었다. 남편은 안해를 사랑하였다. 안해는 남편을 사랑하였다. 그 사랑을 방해할 만한 아무런 방해도 없었다. 금전의 부자유는 없었다. 군잡스런 사람도 없었다.
시집간 뒤로 그 공상과 현실의 새에 얼마의 차가 생긴 것은 사실이었었다.
그러나 처녀시절에 앉아서 모든 아름다운 공상에 잠기던 그 찰나에도 그것이 그대로 현실로 나타나리라고는 믿지 않고 거기다가 얼마의 에누리를 하더니만치 이지적인 인숙에게는 부부생활이 비록 그래도 그 공상과는 얼마의 틀림이 있다 하나 거기 대하여는 아무 불만도 품지 않았다.
‘공상을 포기하라.’ ‘현실을 끄을어올리라.’ 당연히 일어날 이러한 생각조차 그에게 생겨 보지를 않고 그 현실에 만족하였다. 그리고 그 현실을 잃지 않으려 자기의 지식과 지혜를 다하여 노력하였다.
그렇거늘 오늘날 일성이라 하는 뜻하지 않은 방해물이 나타나서 현숙이의 행복된 현실에 한 점의 콤마를 찍어 놓은 것이었었다.
점심 뒤에 가벼운 기분에 잠겨서 공상에서 공상으로 뛰어다니던 현숙이는 문득 일성이를 생각하고 펄떡 정신을 차렸다. 동시에 그의 입에서는 약한 한숨조차 새었다.
“언니, 무슨 이야길 하세요.”
“?”
“갑갑해 견디겠소? 이야기라두 하세요.”
“한참 덤비어 댔더니 이야기 주머니가 그만 말라 버렸구나.”
그런 뒤에는 인숙이는 쾌활히 웃었다.
“그럼 내 할까?”
“하렴.”
“내니 할 이야기가 있어야지 ― 참 언니, 일성이 보셌소?”
현숙이의 입에서는 마침내 일성이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나온 방법이 몹시도 서툴렀다. 다른 이야기 같으면 이렇듯 서툴게 말을 끄을어낼 그가 아니었었지만 그의 마음의 한편 구석을 커다랗게 점령하고 있는 오늘의 이 일에 대하여뿐은 그로서도 늘 사용하는 온갖 기교를 전부 포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성이가 왔더냐?”
“네….”
“너희 집에?”
“네 ―.”
“그러고도 우리 집에는 오지를 않아?”
“언니한테는 안 오겠답디다.”
“왜?”
“늘 꾸지람만 한다나?”
하하하하 그 애에게도 “ . 꾸지람은 싫은 모양이군. 그렇거든 왜 꾸지람을 안 듣도록 안해.”
현숙이는 힐끗 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거기 나타나 있는 커다란 인격 앞에 뜻하지 않고 머리를 숙였다. 같은 손위 누이라 하나 현숙이에게는 노골적으로 협박을 하던 일성이가 이 맏누이 되는 인숙이에게는 저픔을 가지고 감히 찾아오기까지 꺼리던 것도 이 인격에 위압된 때문일 것이었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