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행 - 09

그는 자기의 부모에게는 아무런 애착도 없었다. 그는 자기의 부모가 처음 만난 지 아홉 달 만에 세상에 나왔다. 그러므로 그의 아버지는 그를 제 자식이 아니라 하였다. 무슨 귀찮고 성가신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분풀이는 인숙이의 위에 내렸다. 아버지가 갑갑할 때는 그 답답함을 풀기 위하여 인숙이를 구박하였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어머니뿐은 그를 몹시도 예뻐하였지만 왜 그런지 인숙이는 제 어머니에게 대하여조차 애착을 가질 수가 없었다. 외로운 어머니, 세상의 아무런 일에도 감동이 없는 산송장과 같은 어머니 ― 이러한 제 어머니에게 대하여 스스로 동정하여 보려고 마음도 먹어 보고 애착을 가져 보려고도 하였지만 억지로 일으키려는 사랑과 동정이 나올 리가 없었다.
‘마음에 없는 일을 어떻게 하나?’ 이리하여 그는 마침내 그 생각조차 내어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숙이는 열두 살 때부터 제 형의 집에서 자랐다. 사람의 정과 성격이 조성되려는 가장 귀한 시절부터 어머니의 품에서 떠나서 형의 품안으로 온 현숙이는 따라서 어머니에게 대하여는 아무 애착도 못 가진 대신 제 형을 어머니로 알았다.
열두 살부터 스물세 살까지 ― 그것은 인생이 바야흐로 세상이라는 커다란 바다에 떠나려는 준비를 시작하는 때로부터 그 준비가 완전히 끝나는 시기를 가리킴이었었다. 따라서 그 시기가 인생에게는 가장 보배로운 시기에 다름없다. 그리고 또한 그만치 그 시기의 경고와 수양으로써 그 사람의 인격과 교양과 모든 성격이 결정되는 시기였었다. 그러한 귀중한 시기를 형에게서 보내고 형의 훈도 아래서 자란 현숙이는 비록 피와 살은 어버이에게서 받았다 할망정 오히려 ‘형의 자식’이었었다. 정애도 형에게밖에는 없었다. 존경도 형에게밖에는 못 가졌다. 신뢰도 형에게밖에는 못 가졌다.
겨우 한 아들을 본 뿐 곧 남편을 잃어버린 인숙이는 자기가 장차 가질 수 없는 딸자식에게 대한 애정과 그 교육이며 훈도에 대한 희망과 촉망을 제 동생 현숙이에게 붙였다. 그리고 그러한 뜻 아래서 제 온 힘과 정성을 다하여 현숙이를 가르치고 지도하였다. 한 개의 인격은 이렇게 하여서 어머니를 떠나서 형의 아래서 길러나기 시작한 것이었었다.
‘여자는 절반.’ ‘남자는 그 나머지의 절반.’ 일찌기 홀몸이 된 인숙이는 홀몸이 됨으로 받은 고통과 불만과 불평과 부족을 통절히 느끼느니만치 여자와 남자가 이 세상을 차지할 각각 그 ‘절반’이라는 것을 절실히 알았다. 그리고 여기서 출발한 그의 교육방침은 현숙이로 하여금 무엇보다도 먼저 여인이 되게 하려 하였다. 어떻게 보면 신경쇠약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이만치 남자를 경계하였으며 그와 동시에 남자를 알게 하려 하였다.
‘사내는 남편.’ ‘여인은 안해.’ 첫째 방침에서 출발한 인숙이의 둘째 방침은 당연한 결과로서 여기까지 및 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현숙에게 부어넣은 부부 문제는 어떻게 보면 지당하다고 비평할 종류의 것이었었다. 그러나 그 반면으로는 ‘지나쳤다’는 혹평을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었다. 인숙 자기의 성격에서 출발한 그의 부부관은 그가 여인인만치, 그리고 또한 너무 일찌기 홀몸이 된 만치 ― 좋게 말하자면 이상적이요 나쁘게 말하자면 ‘공상이 낳은 바 지나치는 친절’이었었다. 그는 복잡한 성격보다 단순한 성격이 더욱 아름답다는 것을 몰랐다. 복잡한 성격이 낳은 치밀한 친절보다도 단순한 성격이 낳은 불용의의 실수가 더 아름답다는 것을 몰랐다. 복잡한 성격의 주인공이 행한 행동은 모든 책임을 당자가 질 것이로되 단순한 성격의 주인의 행동에는 책임이 없고 따라서 얼마라도 용서할 수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남편에게 대한 세밀한 친절은 안 해 되는 사람이 남편의 사랑을 받기 위하여 남편에게 바칠 필요조건으로 알았다. 요컨대 비교적 복잡한 성격을 타고난 인숙이는 자기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 마땅히 남편에게 바칠 가장 큰 친절과 주의의 방법을 가장 잘 알았다. 다만 이 세상에는 자기와 다른 생활의 ‘단순한 성격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는 모른 뿐이었었다. 따라서 그러한 사람이 행한 행동에 대하여는 생각하여 본 일조차 없었다.
이 형 아래서 현숙이의 오늘날을 일군 것이었었다.
현숙이가 자기의 형 인숙이의 집에까지 이른 때는 벌써 열두시도 지난 때였었다.
시집가기 전까지의 몇몇 해를 그 집에서 자란 현숙이는 기분이며 감정상 자기 집과 다름이 없는 그 집에 이르면서 거릿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샛골로 들어서면서 대문으로 하여 안방으로 들어갔다.
마침 뜰에서 빨래를 하고 잇던 시어머니(인숙의)가 현숙이를 처음 맞아 준 사람이었었다.
“에구머니, 이게 뉘냐, 소문 없이 나들이를 왜?”
노파는 빨래방망이를 집어던지며 일어서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아직까지 현숙이의 마음에 있던 어떤 주저는 노파의 첫번 태도에 온전히 사라져 버렸다 자기는 . 그 집에 대하여 손님일까 혹은 한집안 사람일까. 이제 자기는 그 집에 손님의 태도로써 들어설까, 혹은 몇 해를 그 집에서 자란 그 집 딸의 태도로 들어설까. 비록 자기의 친정이라 할지라도 일단 출가하였던 딸이 돌아올 때는 그 집의 한 손님에 다름없을 것이었었다. 이것은 자기는 인젠 남편의 사람이지 결코 이 집안의 사람이 아니라는 표적을 나타낸 필요상 당연히 딸 된 자가 취하여야 할 태도일 것이었었다. 남편에게 대한 친절, 남편에게 대한 대접은 당연히 옳은 안해로 하여금 이러한 태도를 취하게 하여야 할 것이었었다.
‘출가한 여자가 마음을 풀어헤치고 마주 설 수 있는 유일의 사람은 남편.’ 의식적으로 이러한 관념을 비교적 강렬히 가지고 있는 현숙이는 제 집을 떠날 때는 비록 제 형 인숙에게 만나러 가는 집에 있어서도 이제 형과 대할 태도가 이전의 처녀 시절의 태도와는 달라야겠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이었었다.
이것이 어떤 의미로는 그에게 한 자랑도 되는 대신 그 반면으로는 쓸쓸함이 또한 섞여 있다 아니할 수 없었다.
“다들 안녕하세요?”
역시 어떤 갈피를 푼 듯한 태도로써 이렇게 인사를 하는 동안에도 그의 마음에는 그 ‘갈피’가 어느덧 저절로 없어져 들어가는 것을 속으로 느끼면서 오히려 기뻐하였다.
“우리야 안녕하지 않구. 자 들어가라. 바빠서 가 보지도 못했지만 너의 지아비도 잘 있냐?”
“네.”
“너두 ― 참, 참 시집을 가면 모두들 조금씩 상하는데 너는 상한 줄을 모르겠구나. 재미가 어떠냐?”
현숙이는 마루에 걸터앉으며 빙그레 웃었다.
“웃는구나. 재미가 있더냐? 기쁘냐? 그럴 게지. 사람 좋다, 점잖다, 돈 있다, 군 인간 없다, 인물 잘났것다 그런 사람이 재미 없어서야 재미 있는 곳이 있을라구.”
그렇습니다. 나는 행복이외다. 내 남편 되는 이는 아무 불만이며 부족이 없읍니다. 그러나 세상사에는 왜 그리 마음대로 안 되는 점이 많습니까. 행복 속에 왜 반드시 불행의 씨가 베어 있읍니까. 이 수수께끼는 어디서 풀어야 하겠읍니까 누가 풀어 . 주겠읍니까. 누구의 눈으로 보든 아무 불평도 없을 내게도 뜻안한 불행이 마치 커다란 날개와 같이 머리 위에 내려덮히니 세상이라는 것은 이런 것입니까? 현숙이는 적적히 웃었다.
“언니 계세요?”
“음 있다. 찾아 주랴?”
하면서 인숙이를 찾아서 가가로 향한 작은 문으로 나가려는 노파를 현숙이는 말렸다.
“내가 나가 보지요.”
그는 그 샛문으로 하여 언니를 만나러 가가로 나갔다.
현숙이가 가가로 나온 때는 인숙이는 마침 어떤 부인 손님에게 화장품을 팔고 있었다.
인숙이는 현숙이를 보았다. 때때로 부부생활의 얼마의 도움이라도 주고자 현숙이의 가정을 찾아오고 하던 인숙이는 현숙이에게는 비록 친정언니라 하나 친정 사람과 같이 보이지 않았다. 현숙이는 방긋이 한 번 웃은 뒤에 언니의 가까이로 가서 부인 손님이 고르고 있는 화장품에 눈을 던졌다.
“집을 비우고?”
형제의 새에 아무 인사도 있기 전에 인숙이는 이 말부터 물었다.
“그럼.”
“그럼? ― 값으로 말하면 이편 것이 비싸지만 써 보니깐 품질은 이 편 것이나 은 것 같습디다 ― 주부가 집을 비워 두고 다니면 되나?”
농인지 힐문인지 구별키가 힘든 이 말에 현숙이도 다만 미소로써 대답을 대신하였다. 그리고 돌아서서 이편 교자에 와서 앉았다.
손님을 보낸 뒤에 인숙이도 왔다. 형제에서 몇 마디의 잡담을 할 동안에 인숙이의 시어머니도 나왔다.
“너 현숙이 데리고 안방에 들어가렴. 내 방 좀 볼게.”
“참 어머님한테 그렇지 않아도 부탁을 하려고 그랬는걸요.”
“내 좀 봐 주지.”
어린 상속인 하나를 데리고 그것뿐을 유일의 촉망으로 세상을 살아 가는 과부 시어머니와 과부 며느리의 새는 세상의 말하는 바 보통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새와는 달랐다. 친어머니와 친딸 ― 그 가운데도 특별히 의가 좋은 모녀와 같았다. 둘이 다 같이 청춘 과부라 하는 점에서 생겨난 동정도 두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에서 보통 말하는 바의 고부간의 반목이라는 것을 없이 한 데 큰 힘이 되었을 것이지만 그보다도 더 큰 원인은 두 사람의 성격상의 유사점이었었다. 활달하고 아무런 일에든 기탄과 갈피가 없으며 마음에 없는 일이면 말을 하든가 마음에 있는 일을 안하든가 할 줄을 모르는 그들은 그 서로 공통되는 솔직하고도 활발함에 자연히 신애함을 느끼고 거기서 출발하여 비록 고부간이라 하나 아무 거리낌이 없는 모녀와 같은 새가 된 것이었었다.
그럼 좀 “ 봐 주세요. 그렇지만 요전에같이 ― 현숙아 하하하하.”
인숙이는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면서 웃기 시작하였다. 시어머니도 웃었다.
“요전에 아 ―.”
“얘, 요전에 어디 잠깐 다녀올 일이 있어서 어머니께 방을 부탁하고 나갔다가 돌아오니깐 웬 부인네가 성이 독같이 나서 찾아오더니 아 욕을들이 하겠지, 내야 영문을 알 수가 있겠니. 좌우간 후에 알아보니깐 내가 풀을 쑤어서 크림병 속에 넣어 두었더니 어머니께서 그것을 모르고 팔았다나. 그래서 그 손님이 속여먹었다고 와서 야단을 한바탕 치고 갔구나. 응 바로 이게로다.”
하면서 인숙이는 풀을 담은 크림병을 가리켰다. 현숙이도 웃었다.
“내야 네가 거기다가 풀을 담았는지 밥을 담았는지 어떻게 알겠니, 크림병이 하나 놓여 있기에 그걸 종이에 싸 주었지.”
“어머니도, 그뿐인가요? 파리제 구 원짜리 향수를 기름이라고 기껏 비싸게 받느라고 팔십 전을 받으신 일도 있지요. 십오 전짜리 분을 칠십전 받으신 일도 있지요?”
“모르는 걸 어떻게 파니? 오늘은 손님이 오기만 하면 너한테 들어가서 알게 하마.”
“참 우스워서 ―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인숙이는 아직도 우습다는 듯이 웃으면서 일어섰다. 현숙이도 따라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