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행 - 08

‘됐다.’ 그는 안심과 함께 잠깐 얼굴을 붉혔다가 남편을 맞으러 대청으로 나갔다.
“늦었지?”
남편은 들어와서 자리에 앉으며 안해에게서 나는 화장의 내음새를 상쾌한 듯이 맡으면서 이렇게 물었다.
“아뇨.”
이렇게 대답은 하였지만 현숙이는 남편의 돌아오는 것이 늦었는지 빨랐는지는 생각도 안하였던 바였었다.
“영옥인 곧 갔소?”
“네 ― 아니, 일성이, 저 우리 동생이 온 뒤에도 좀더 앉았다가 갔으니깐 아마 아홉시 반쯤 갔지요.”
“행랑 어멈보고 바래다 주랬소?”
이 뜻밖의 질문에 현숙이는 놀랐다. 마음이 얼굴을 붉혔다. 그러한 사소한 일은 생각지 않을 남편으로서도 넉넉히 주의하는 일을 안해 된 자로서 못하였다 하는 것은 현숙이에게는 부끄러운 일이었었다. 낮과도 달라서 밤에 과년한 처녀를 혼자 보냈다 하는 것은 현숙이의 커다란 실책에 다름없었다.
통상시 같으면 그런 일을 잊을 현숙이가 아니었지만 그때 일성이와의 다툼으로 불유쾌하였던 그는 그만 잊어버렸던 것이었었다. 현숙이는 변명키 전에 솔직하게 자기의 잘못을 남편 앞에 내어놓았다.
“미처 생각이 및질 못해서 그만.”
“그럼 안 바래다 주었소?”
남편의 물음은 질문이라기보다 힐문에 가까웠다. 그 앞에 현숙이는 조용히 복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
이렇게 대답하고 눈에 온 광채를 모아 가지고 남편을 쳐다보았다.
“아직 밤이 깊지 않았기에 마음 놓고 그냥 보냈더니 ― 어디 큰댁까지 잠깐 다녀오리까?”
“아니 무슨 일이 있겠다는 게 아니라 아직껏 그렇게 해왔기에 말이오. 게다가 혼자 보내면 어머니께서 좀 부족히 생각하실지두 모르겠구나.”
이 말의 앞에 현숙이는 부끄러움을 느끼기 전에 먼저 감사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편의 그 주의는 남편 자기의 주의라기보다 오히려 어머니와 안해의 새에 어떻게 하면 생길지도 모르는 불만과 부족감을 미전에 방지하려는 그 주의에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안해 된 자가 먼저 깨달아 가지고 일일이 세심한 주의로써 행하여야 할 종류의 일이었었다.
“게까지 미처 생각이 돌질 못해서 그만 ― 게다가 일성이도 와 있고―.”
“참 그 사람이 왔어. 다시 왜 왔읍디까?”
“공연히 왔겠지요.”
“영옥이도 봤소?”
“네.”
“그 사람 뭐? 일성이?”
“네, 일성이요.”
“일성이와 영옥이와 봤나 말이오.”
“한 삼십 분 가량 같이 앉았었지요.”
남편은 다시 그 말에는 응치 않고 담배를 꺼내어서 붙이려 할 적에 행랑어멈이 세숫물 떠다가 놓는 소리가 대청에서 났다. 현숙이는 일어나서 양치기구와 비누와 세수 수건을 남편의 앞에 갖다 놓았다. 그러자 남편이 세수를 하러 나가는 것을 기다려서 자기도 자리를 펴려 침실로 건너갔다.
삼십 년 전에 무장야의 너른 벌판에 아름다운 범나비가 한 마리 떠다니고 있었다 그 범나비가 . 아무 뜻 없이 어떤 동리까지 날아왔다. 그 때문에 어떤 어린아이 하나가 그 범나비를 잡으려다가 그만 참혹히도 죽는 경우에 이르렀다.
그 어린아이가 참혹히 죽기 때문에 나흘 뒤에 어린아이의 아버지가 운전하던 기차가 탈선을 하여 여기서 세계철도사에 다시 볼 수 없는 참극을 이루어 놓았다.
나비의 아무 뜻도 없는 여행은 여기서 무서운 비극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것으로 온전히 사건이 끝난 것이 아니었었다. 그때의 그 기차에 조선 대학생 서인준(徐仁俊)이라는 사내와 그의 약혼자 신함라(申咸羅)라는 여자가 있었다.
삼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에 인준이는 미국으로 건너가 있었다. 전니쇼우라는 이름으로서 세계 자연과학계의 상당한 이름까지 얻은 학자가 되었다.
그의 약혼자이던 신함라는 그의 고향 인천서 최모(崔某)라는 의사에게 시집을 갔다.
함라는 왜 인준이를 버리고 최모에게 시집을 갔나. 범나비의 아무 뜻도 없는 여행은 이 서로 사랑하던 두 남녀로 하여금 뜻에 없는 파경의 설움에 울게 하였다.
세상의 온갖 군잡스런 문제를 집어치운 인준이는 오로지 학업에 힘써서 오늘날 서 박사라 하는 명예있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에 반하여 그의 약혼자이던 신함라는 뜻에 없는 시집을 가서 그 뒤 삼십 년이라는 기다란 세월을 불평과 불만의 가운데서 보냈다. 목숨 있는 인형 ― 천하의 많고 많은 일을 아불관언의 태도로써 그저 죽어지지 않으니 살아간다는 가련한 생활을 계속하는 함라와 ― 아직 독신으로 지내며 세상의 온갖 일을 생각치 않고 오로지 자기의 연구에만 온 힘을 쓰고 있는 인준이의 두 사람 가슴에는(그들의 태도로 미루어) 아직 많은 미련이 남아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괴한 운명은 삼십 년 뒤에 그 서인준의 조카 되는 서용언이와 신함라의 딸 되는 최현숙이를 부부라는 명색 아래 연결시켜 놓았다. 젊은 두 남녀는 자기네의 온 존경과 사랑을 상대자에게 주었다. 삼십 년 전에 한 사람에게는 제 삼촌이요 한 사람에겐 제 어머니 되는 사람이 오늘날의 자기네들과 같이 서로 사랑을 속삭였다는 것은 꿈에도 알지 못하고 신혼인 두 사람은 서로 사랑을 음식삼아 즐거운 날을 보내고 있었다.
‘태평행’의 첫째날은 막이 열렸다.
삼십 년 동안을 고국에는 돌아올 생각도 하지 않고 있던 서 박사에게서 갑자기 귀국한다는 기별이 온 것도 이 날이었었다. 그리고 그 날에 등장한 광대 네 명(용언과 현숙의 부처, 용언의 누이, 현숙의 오라비 일성이)에 대한 생활과 성격과 교양에 대한 윤곽은 비교적 명료히 독자의 머리에 그려졌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특수한 성격을 가진 네 명 밖에 아직도 현숙의 형 인숙이와 어머니 신함라, 용언의 삼촌 서 박사의 세 사람의 중요한 광대는 등장치를 못하였다. 그러면 작자는 이제 장차 전개할 사건을 붓하기 전에 인제 그 세 사람의 생활과 성격의 윤곽을 보여 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평범한 속에서 전개되어 나아가는 뜻하지 않은 비극의 씨를 보여 둘 필요가 있다.
이튿날 아침 깬 뒤에는 현숙이는 어젯밤 자기에게 생겼던 불유쾌한 일을 거의 잊었다. 머리 한편 구석에 좀 불유쾌한 감정이 성가시게 붙어 있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의 생활 상태에 변동을 줄 만치 그를 지배치를 못하였다. ‘일성이’라 하는 불유쾌한 기억과 ‘천 원’이라는 무시무시한 생각이 때때로 그의 마음에 일어나기는 하였지만 그것뿐이었었다. 충분한 잠을 자고 난 ― 남성적 매력으로서 빛나는 남편이 얼굴은 현숙이로 하여금 온갖 다른 군잡스런 일을 잊게 하는 것이었었다. 예에 의지하여 부처 단 두 사람 새에 간단한 조반을 끝낸 뒤에 남편이 연구소로 가려 할 때에 현숙이는 남편에게 자기는 오늘 언니한테 잠깐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였다.
다른 때 같으면 자기의 이전의 비밀을 일성이의 입에서 봉하기 위하여 돈을 마련하러 가는 그 인사라 이런 일을 남편의 앞에 천연히 하지 못할 것이었었지만 받았던 커다란 격동은 그로 하여금 아무 어려움이 없이 이 말을 하게 한 것이었었다. 그러나 이 말을 하는 동안에도 그의 마음에는 형용키 어려운 쓸쓸함이 있었다.
‘당신은 모르시지요? 나는 마음속에 커다란 비밀을 가지고 있는 여인이외다. 이 비밀을 일생을 품고 있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할 때에 내 마음은 여간 절통치 않습니다. 이 비밀을 당신의 앞에 모두 풀어헤쳐 놓으면 내 마음은 얼마나 시원하겠는지요. 그러나 이 비밀을 당신이 아신 뒤에 당신의 마음속에 당연히 일어날 불유쾌함을 생각할 때는 나는 차마 이것을 당신께 이야기할 수가 없읍니다 . 모든 것을 양해해 주세요. 그리고 용서해 주세요.
나는 당신을 내 온갖 정성을 다하여 사랑합니다. 그 사랑의 힘으로 온갖 것을 모두 용서해 주세요.’
“언니한테?”
“네.”
“언니란 저 창선(昌善)이 언니 말요?”
“네.”
“갔다 오구료.”
남편은 별일을 다 의논하잔다는 듯이 선선히 승낙을 한 뒤에 연구소로 갔다.
남편을 보낸 뒤에 현숙이는 간단히 설거질을 하고 들어와서 화장대 앞에 마주 앉았다. 열시에서 열두시까지는 자수 강습회, 오후 세시까지는 언니의 집, 그 나머지의 시간을 장보는 것과 가정 안에서의 일로 ― 현숙이의 오늘의 프로그램은 이러하였다.
그러나 화장대에 마주 앉는 순간 그는 어느덧 생각에 잠겨 버렸다. 좀 있다가 당연히 있어야 할 인숙이와 자기와의 문답이며 그 문답에서 또 다시 생겨 날 뒷 문답들을 이리저리 생각하는 동안에 그는 어느덧 화장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영리함과 솔직함을 자기의 가장 큰 무기로 삼고 자랑으로 삼던 그가 어떻게 하면 자기의 언니에게 의심을 받지 않고 천원이라는 돈을 꾸어올는지 그 교묘한 거짓말에 대하여 여러가지로 궁리를 하고 있는 자기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 거짓말을 연구하는 데 대하여 아무 부끄러움이며 미안스럼을 느끼지 않는 자기를 발견하고 오히려 놀랐다.
분병에 손을 대기도 전에 열시가 지났다. 화장을 끝내고 옷을 갈아입은 때는 벌써 열한시도 지났다.
여기서 그는 자기의 프로그램을 고쳤다. 그리고 자수 강습회는 그만두고 곧 형의 집으로 가기로 방침을 세웠다.
그가 사랑방을 한 번 검분한 뒤에 도배지의 예산을 세우고 어멈에게 부탁을 한 뒤에 형의 집으로 향한 때는 벌써 열두시도 거의 된 때였었다.
현숙이 형 인숙이는 서른한 살이었었다. 스무 살에 어떤 학교 교원에게 시집을 가서 그 이듬해로 한 아들을 보았다. 그 이듬해로는 남편을 잃었다.
사랑의 보금자리에서 아직 그 맛과 자미를 충분히 알고 이해하기 전에 벌써 어머니가 된 그는 안해의 지위에서 어머니의 지위에 올라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지위에 . 올라선 지 며칠이 지나지 못하여 남편을 잃은 그는 또 일전하여 가장의 지위에까지 올라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그의 청춘은 애처로이도 깨어져 버렸다. 아름다운 꿈과 자기자미한 새는 그를 건너뛰었다. 그리고 ‘현실’이라는 커다란 짐은 어느덧 그의 어깨에 지워졌다.
그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용감히도 이 쓰고 찬 세상과 싸우려 하였다.
아름다운 꿈이라는 것을 경험하기 전에 벌써 현실의 쓰라림에 부대낀 그는 여기서 자기의 성격을 고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꿈? 그것은 꿈이로다.’ ‘현실? 그것은 분투로다.’ ‘분투? 그것은 즐거움이다.’ 비교적 냉정한 이지를 가지고 있는 그에게는 어느덧 이러한 생각이 움 돋기 시작하였다. 현실은 어디까지든지 분투이며 그 분투에서야만 인생의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그의 이 주의는 어떻게 보면 할 수 없는 그의 경우에서 생겨 난 것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는 자기의 분(分)을 잘 지키고 결코 그 ‘분’ 이상에 올라서 보려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의 남겨놓은 적은 유산으로 자그마한 화장품점을 차려 놓고 시어머니와 아들을 데리고 분투의 일생을 보내려 하였다.
이러한 십 년 동안에 그의 성격에서는 여자다운 온화함은 없어져 버리고 그 대신에 사내로서의 굳셈과 가장으로서의 능함이 생겨 났다.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은 하늘에 한 사람 땅에 두 사람 합하여 세 사람이라 하였다. 하늘에 있다는 것은 무론 자기의 없은 남편을 가리킴이었었다. 비록 부부생활을 오랫동안은 못하였을망정 그 짧은 동안에 남편에게 바쳤던 그의 사랑은 몹시도 컸었던 것이었었다. 더구나 남편이 없는 이튿날부터 자기와 자기 식구의 입을 위하여 괴로운 세상과 분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은 그는 남편의 죽음을 고요히 조상할 기회도 못 가졌더니만치 그에게 대한 애연한 생각은 더욱 컸던 것이었었다.
땅에 두 사람이란 것은 하나는 제 보배이요 남편의 복사라고 할 만한 외아들 창선이를 가리킴이요 또 하나는 동생인 현숙이를 가리킴이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