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넘어졌다. 그리고 남은 경기는 W대학의 대장조와 부장조 T대학의 부장조― 이러하였다. 이리하여 준결승전에 들어가렬 때에 W대학의 부장조는 기권을 선언하였다. 이리하여 준결승전은 없어지고 T대학의 부장과 W대학의 대장으로 결승전의 막이 열렸다. |
| 승리가 W대학으로 갈 것은 아무도 의심치 않았다. 대장을 꺾인 T대학의 부장이(부장으로 T의 대장을 꺾은) W의 대장을 대항하리라고는 생각 못할 바였었다. 두 대학에서 다 응원의 소리조차 없었다. T대학에서는 할 기운이 없었다. W대학에서는 할 필요가 없었다. 그만치 승부는 확정적의 것이었었다. |
| 어느덧 3대 0이라는 심판의 부름과 함께 그들은 또 자리를 바꾸었다. |
| 자리를 바꾼 뒤에도 역시 형세는 불리하였다. 잠깐 새에 쓰리 제로라는 심판의 선언과 함께 하나 더로써 게임이 끝난다는 주의가 들렸다. 그때에 T 대학의 후위가 전위에게로 가서 한참 무슨 의논을 하였다. 다시 경기는 시작되었다. 구경꾼들은 차차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때부터 열린 경기는 기괴한 경기였었다. T의 전위는 죽은 듯이 가만 있었다. 그리고 오는 볼은 모두 후위가 받았다. 당연히 전위가 받을 볼이라도 전위는 몸을 피하고 후위가 받았다. 그리고 후위는 그 볼을 고즈너기 높이 넘겨서 적의 전위를 패스하여 후위에게 주었다. 무서운 전위의 공격을 피하여 볼은 천천히 높이 떠서 적의 후위에게로만 갔다. 이리하여 그 둘은 적을 ‘먹이려’하지 않고 다만 적의 우연한 실수를 기다리는 것으로서 전략을 고쳤다. 그리고 자기네만 실수를 안하는 것으로 유일의 전략을 삼으려 하였다. |
| 곧 한 점을 회복하였다. 그러나 응원의 소리조차 없었다. 한 점이 무슨 쓸 데가 있을까. |
| 좀 뒤에 마침내 한 게임을 회복하였다. T대학에서는 차차 응원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W대학에서도 ‘네버 마인드(never mind)’ 소리가 연하여 나기 시작하였다. 돌아가려던 구경꾼도 도로 발을 돌이켰다. |
| 이상한 동정심은 차차 관중으로 하여금 아직껏 경멸하던 T대학에게로 쏠리게 하였다. T대학의 후위는 침착하였다. 낭패하여 자포가 된 듯한 전위를 밀어 버리고 오는 볼은 모두 저 혼자서 맡아서 가장 침착한 태도로써 기공을 희롱치 않고 저편 쪽으로 높이 넘겨 보내는 후위의 모양은 침통하달 수도 있었다. 그는 승부라 하는 것은 온전히 도외시(度外視)하는 듯하였다. |
| 적이 실수를 할지라도 기뻐하는 듯하지도 않았다. 자기네에게 실수가 있어도 그것을 탄하는 듯하지 않았다. |
| 또 한 게임을 회복하였다. 3대 2가 되었다. T대학 측에서는 경기장까지 뛰어나오면서 기쁘냐고 하였다. W대학 측에서는 ‘네버 마인드’소리가 더 커졌다. 관중의 호기심은 차차 더하여 갔다. W대학의 대장조는 T대학의 부장조의 기괴한 전략에 낭패하였다. 이 낭패는 그들로 하여금 뜻 아니한 실수를 거듭케 하였다. 형세는 온전히 X였었다. 어느 편이 이기겠다고 아무도 단언할 수가 없었다. |
| 이때부터 아직껏 후위의 제지로 말미암아 가만히 있던 T대학의 전위가 활약을 하기 시작하였다. 얼마간의 형세의 회복이 더하는 것은 전위로 하여금 좀 안심케 한 모양이었었다. 그리고 이 안심은 그로 하여금 활약할 야심이 생기게 한 모양이었었다. 그러나 그 활약은 결코 이로운 활약이 아니었다. |
| 마침내 승부는 났다 . 첫 번 예상같이 W대학이 이기기는 하였다. 그러나 관중의 칭찬은 오히려 진 T대학에게로 몰렸다. 아니 오히려 T대학 부대장 조의 후위에게로 몰렸다. |
| T대학의 전위는 래킷을 상에 던지며 분개하였다. 그러나 끝까지 잘 싸운 후위는 씩 한 번 웃고 들어갈 뿐이었다. |
| 구경을 끝내고 돌아온 현숙이는 그날 밤 노곤한 몸을 자리에 누웠다. 처녀에 적당한 몇 가지의 공상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뒤에 곧 단잠에 떨어지려던 그에게는 문득 뜻하지 않고 아까 그라운드의 광경이 눈앞에 다시 보였다. 동시에 마지막 순간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고 싸운 그 후위 ― 승부가 끝이 난 뒤에도 다만 미소로써 자기네의 패배를 조상한 그 후위의 모양이 눈앞에 어릿거렸다. |
| 현숙이도 미소하였다. 그러나 그 미소 가운데는 처녀로서의 부끄러움도 섞여 있었다. |
| “당신은 사내다운 사람이외다.” |
| 그는 그 그림자에게 향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
| 그리고 좀 뒤에 그는 곤한 잠에 빠졌다. |
| 이튿날 학교에 가려고 하까마(치마)를 입은 현숙이는 하까마에서 무슨 종이조각이 하나 내려지는 것을 보고 주워서 펴보았다. 그것은 어저께 그라운드에서 받아 넣었던 선수멤버이었었다. 처음에는 뜻없이 그것을 구겨서 내어던지려 하였으나 T대학의 부장조의 후위의 생각이 문득 나면서 현숙이는 그 종이를 펴보았다. 멤버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
| ‘서(徐), 기무라(木村)’ 멤버에 후위의 이름을 먼저 쓴다는 것쯤은 현숙이도 아는 바였다. 그러면 그 T대학 부장조의 후위는 ‘서’라 하는 성을 가진 사람이었었다. |
| 그 사람과 자기는 같은 조선 사람이라 하는 점은 이상히도 현숙이의 마음을 힘있게 두드렸다. 이리하여 현숙이의 생활에는 ‘서’라 하는 똑똑치 않은 이름이 어떤 진전을 가지기 비롯하였다. |
| 어떠한 사내를 보든 ‘사람’으로밖에는 보지 못하던 현숙이는 여기서 처음으로 ‘사내’를 보았다. ‘동경서 유학하는 같은 조선 사람’이라 하는 공통점은 현숙이로 하여금 막연히 좀더 친근한 생각을 일으키게 하였다. |
| 몇 가지의 의혹이 그에게 안 일어난 바는 아니었었다. 중국 사람의 성에도 서씨 가 있다는 ‘ ’ 것이 생각났다. 대만 사람에게도 ‘서씨’가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 일단 가깝게 된 그 서씨는 다시 멀리 할 수가 없었다. |
| 서씨 ― 혹은 서씨와 같은 사람. 이러한 막연한 허수아비를 공중에 그려 놓고 현숙이는 학업을 닦았다. 품성을 쌓았다. 서씨가 아닌 사내 혹은 서씨와 같지 않은 사내들에게는 한낱 ‘사람’에 지나지 못하였다. |
|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그 서씨를 좀 구체적으로 알아볼 용기까지는 못 내었다. 다만 동경 조선 사람의 회합에 부지런히 출석하는 것으로 그는 행여나 그 서씨를 종내 알게 될까 하였다. |
| 그러는 동안에 현숙이는 서씨라 하는 아름다운 꿈을 가슴에 품은 채로 학업을 끝냈다. |
| 그의 형 인숙이는 몇 해 전의 약속에 의지하여 현숙이에게 좋은 짝을 얻어 줄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적당한 짝은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동생의 오늘날을 만들어 놓은 형은 따라서 가장 동생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었다. 그는 제 사랑하는 동생의 짝으로서는 어떠한 사람이 가장 적당할지 잘 알았다. 그러나 고르면 고를수록 부박한 사람만 눈에 띄었다. ‘무게가 있는 사람’― 이것이 그의 고르는 첫째 조건이었었다. 학교에서는 넉넉히 학업을 쌓았지만 현숙이는 귀국한 뒤에도 온갖 방면으로 지식을 넓히기를 게으르지 않았다. 여자의 대상으로는 반드시 ‘남편’이라는 사람을 세기를 잊지 않는 현숙이는 자기에게도 같은 눈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씨 혹은 서씨와 같은 사람 ― 이러한 막연한 형상을 가진 ‘남편’이라는 사람이 그의 머리 속에 박혀 있기는 하였지만 그 사람의 주위라 하는 것은 온전히 X였었다. 혹은 회사원일지도 모를 것이었었다. 혹은 기술자일지도 모를 것이었 었다. 혹은 장사하는 사람일지도 모를 것이다. 교원, 변호사, 관리, 부랑자― 어떠한 배경을 가진 사람일지 예상을 허락지 않는 이 문제 앞에 현숙이는 그 가운데 아무 것에 속한다 할지라도 덜컥 만나는 날에 결코 낭패치 않을 만한 지식을 얻어 두려 하였다. 이것은 장래의 남편에게 대한 안해 된 사람의 친절이라 할 수도 있었다. 그 어느 편으로 보든 장래의 남편을 맞을 처녀로서는 가장 유리한 방책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이러한 견해와 자각 아래서 온갖 방면에 지식의 발을 넓히던 그는 어떤 때 어느 신문사 주최의 화학연구소 견학단에 따라갔다가 그 연구소 제2부 연구실에서 우연히 ‘서’를 보았다. |
| 똑똑히 말하면 ‘서’를 본 바가 아니었었다면 예전에 몽롱한 기억에 남아 있던 그 얼굴을 연구소 안에 있는 ‘서’에다 갖다가 비길 공통점조차 현숙이는 몰랐다 그러나 . 현숙이는 그를 보는 순간 그를 ‘서’로서 인정하였다. |
| 오랫동안 벼르던 꿈은 마침내 실현될 가능성을 현숙이에게 보여 주었다. |
| 현숙이는 주저치 않고 그 뜻을 자기의 보호자이요 형인 인숙에게 말하였다. |
| 인숙이도 용언이를 보았다. 그리고 제 동생의 눈이 높음을 만족히 여겼다. |
| 이리하여 현숙이의 삼 년 동안의 꿈은 마침내 실현되게 된 것이었다. |
| 두 사람은 첫 회견에 서로 그 인격과 교양을 인정하였다. 약혼은 성립되었다. 즐거운 약혼 시기의 반 년도 지나갔다. |
| 현숙에게 있어서는 남편을 맞을 만한 ― 그리고 용언에게 있어서는 안해를 맞을 만한 준비가 충분히 완전히 되기를 기다려서 그들은 결혼식을 올렸다. |
| 그런 뒤에는 지금의 이곳에 집을 하나 사 가지고 따로 나온 것이었었다. 행랑방에 행랑 사람 부처를 둔 뿐 현숙이는 안잠자기며 침모여 식모며 어떠한 병색을 띤 사람이든 다른 보조자를 거절하였다. 이것은 즐거운 신혼 시기를 부처 단 두 사람에서 즐기려는 현숙이의 욕심에서 나온 것이었었다. 그러나 급기 그 일이 실현된 뒤에는 그것은 현숙에게도 다른 의미로 해석되었다. |
| 신혼의 즐거운 시기를 부처 단 두 사람에서 즐기겠다는 뜻에서 출발한 ‘간단한 부처생활’은 그 일이 실현되면서부터는 가정의 전 책임을 혼자 졌다는 커다란 책임감을 현숙이에게 일으키게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말하자면 가정상의 온 권리를 자기 혼자서 잡았다는 커다란 자랑에 다름없었다. |
| 세상에 대하여 그다지 허영심이 없는 현숙이는 그만치 또한 남편에게 대하여서는 허영심이 많은 여인이었었다. 남편과 가정 ― 이 두 가지의 커다란 짐을 조금이라도 그 취급함에 실수를 남편에게 보이는 것을 현숙이는 죽기보다도 더 싫어하였다. 완전한 안해로서 완전한 주부로서 남편에게 대하여는 손톱눈만치의 흠이라도 안 잡히려고 현숙이는 자기의 가지고 있는 지혜와 지식의 전부를 거기다 부었다. |
| 이리하여 그들의 앞에는 행복된 가정이 전개될 것이었었다. |
| 남편의 사진을 가슴에 안고 이런 공상에 잠겨 있던 현숙이는 시계가 반 시를 울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계는 열한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
| 현숙이는 꿈에서 깨어나듯이 정신을 차리고 사진을 제자리에 도로 갖다가 놓은 뒤에 그 방을 정리하고 침실로 건너갔다. 침실에서 남편의 돌아옴을 맞을 화장을 하려고 경대 앞에 마주 앉은 그는 그만 얼굴을 붉혔다. 아까 우느라고 쓰러졌을 때에 앞 머리카락이 모두 흩어지고 몇 올은 이마를 걸치고 뺨을 걸쳐서 옷섶에까지 내려온 것조차 있었다. 아무리 그때에 그의 받은 바 충동이 컸은들 이 꼴이 평소에 단아함을 자랑하던 자기의 꼴이냐고 현숙이는 뜻하지 않고 얼굴을 붉힌 것이었었다. |
| 만약 사오 분 전에 남편이 덜컥 돌아왔으면 자기는 어떻게 변명하였을까? |
| 설혹 남편이 안 돌아온다 할지라도 이 꼴을 하고 이삼십 분 동안을 그냥 정신없이 앉아 있었다 한 것은 그에게는 확실히 경멸할 만한 일이었었다. |
| 그는 서랍에서 빗을 꺼내어 가지고 머리를 빗었다. 이제 머리를 풀어서 다시 빗을 시간을 가지지 못한 현숙이는 늘어진 머리털을 빗어올리고 손으로 두어 번 톡톡 두드린 뒤에 그물을 씌우는 것으로 만족치 않을 수 없었다. |
| 그런 뒤에 얼굴에 엷게 화장을 하고 아래 떨어진 머리털이며 분가루를 비로 쓸어서 종이에 담아 가지고 내어버리려고 그가 일어설 때에 대문에서 남편의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



